겸손

그대의 성공이 박수를 받을 때, 그대의 실패가 자아낸 비웃음도 귓전에 들리게 하십시오.

높은 건물 꼭대기에 있는 금빛 풍향계가 되려고 갈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아무리 반짝인다 해도, 그것이 아무리 높다 해도 건물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땅속 토대 밑에 숨겨진 주춧돌이 되기를, 바로 그대 덕분에 그 건물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예수님, 남들의 칭찬을 받을수록 제 마음이 더욱 수그러지게 해주십시오. 제가 과거에 어떠했는지, 또 당신께서 저를 버리 신다면 어찌 될 것인지 보여주시면서 말입니다.

자신이… 쓰레기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만일 ‘거룩한 정원사’께서 우연히 그대를 손에 들고 깨 끗이 문질러 씻고 화려한 꽃으로 가득 채우실 때, 그대의 추한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준 향기와 색깔을 뽐내선 안됩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십시오. 자신이 쓰레기 깡통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되는 날, 그대는 자신이 남들에게 멸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출 때 겸손한 것이 아니라, 남들로 인해서 굴욕을 당할 때, 또 그것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참을 때 겸손한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정말로 자신을 안다면, 그대는 멸시당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며 명예와 찬사 앞에서는 마음속으로 흐느낄 것입니다

남들이 자신의 결점을 본다고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마음 아파해야 하는 것은 그대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모욕 과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못된 본보기입니다. 그외에는 그대의 본모습이 알려지고 멸시당한들상관없습니다. 

그대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그대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니까요.

만일 그대가 마음의 자극과 이성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대의 악행들을 참아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그대는 추하고 징그러 운 벌레처럼 언제까지나 땅에 납작 엎드려 있고 싶을 것입니다.

겸손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으니 “Quia respexit humilitatem” 즈가리아의 집에서 성모님께서는 믿음이나, 사랑이나, 홈없으신 순결을 초월하여 이 기쁜 찬미 가를 부르십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으니, 이제부터는 온 세상 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그대는 먼지, 땅에 떨어진 더러운 먼지입니다. 성령의 입김이 세 상의 모든 사물 위에 그대를 높이 올려놓고 금처럼 빛나게 해주신다 해도, 그대가 높은 곳에서 정의의 태양이신 하느님의 광채를 반사하고 있다 해도 자신의 비천함을 잊지 마십시오.

한순간이라도 교만해지면 그대는 땅으로 떨어질 것이고, 빛이었 던 그대는 다시 진흙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대는 교만합니까? 무엇 때문에?

교만? 왜죠? 머지 않아 아마 몇 년 며칠 안에서 그대는 살이 썩고 벌레가 득실거리고 악취를 풍기는 액체가 흐르고 더러운 수의에 싸인 흐물흐물한 시체가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 그대를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식, 명성, 말솜씨와 능력이 뛰어난 그대. 하지만 겸손하지 않다면 그대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 자아를 뽑아버리십시오,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런 후에 비로소 그대는 그분의 사도군단 말단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거짓 겸손은 게으름입니다. 그대는 겸손한 척 하면서 사실상 의무인 권리들을 하나둘 포기합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여 사도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십시오. “나는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 : 강합니다. Cum enim infirmior, tunc potens sum”

“신부님, 신부님은 어떻게 이런 오물을 참아내실 수 있습니까? 그대는 통회의 고백을 한 뒤 그렇게 질문했습냐다. 나는 침묵했습니다. 그대의 겸손이 자신을 그렇게 오물로, 오물덩어리로 느끼게 해주었다면, 우리는 그대의 모든 나약함을 참으로 거대한 그 어떤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가 보십시오. 예루살렘 입성 때 어린 나귀 한 마리가 그분의 옥좌였습니다!

겸손은 내적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자신의 영적 진보를 느끼는 것이 겸손의 부족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대는 하느님께 감사드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의 옷은 좋은 옷이지만 빌려온 옷이란 말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마치 손잡아 데리고 가듯이 우리를 겸손으로 이꿉니다.

그대가 하고 있는 사도직의 정신과 규칙들을 방어하기 위한 확고함이 거짓 겸손으로 비틀거려선 안됩니다. 그런 확고함은 자 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주덕의 하나인 용기입니다.

* 사추덕 :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네 가지 덕으로 현명, 정의, 용기, 절제를 말함

그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대는 혼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그대를 잠시 내버려두자 그대는 곧장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겸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특별한 도움이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교만한 생각들은 버려도 됩니다. 그대는 단지 화가의 손에 들린 붓일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나에게 말해보십시오. 만일 그 붓이 화가가 하는 대로 따르지 않 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지를 말입니다.

그대가, 그처럼 텅 비고 오만한 그대가 겸손해지기 위해선 이사야의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너는 땅에 떨어 지는 물한 방울이거나 이슬 같아서 혼적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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