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들

박해의 폭풍은 좋은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벌써 잃어버렸다면 더 이상 잃을 게 없습니다. 

성교회라는 나무를 뿌리뽑을 수 있는 바람이나 폭풍은 없습니다. 나무가 뿌리째 뽑히지 않았다면 마른가지들만 떨어집니다. 그것들은 잘 떨어졌습니다.

동의합니다. 그 사람이 그대에게 나쁘게 처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하느님께 그 사람보다 더 나쁘게 처신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어느 곳을 지나가시건 무관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증오했습니다. 

어떤 사도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며 당신을 따를 때, 혐오나 호감의 중얼거림이 있다고 해서 과연 저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요? 그가 또 한분의 그리스도이기에!

다시 한번 그들은 말했고 글을 썼습니다. 찬성, 혹 반대. 좋은 의도로, 그리고 나쁜 의도로. 알랑거림과 중상모략, 칭찬과 박수갈채, 성공과 실패…. 

바보, 정말 바보! 그대가 목적지를 향해, 머리와 가슴을 하느님께 향하여 똑바로 가고 있다면, 휘이잉 하는 요란한 바람소리나 귀뚤귀뚤하는 귀뚜라미 소리, 혹은 음~메 하는 소리, 혹은 꿀꿀거리는 소리, 혹은 힝힝거리는 소리들을 왜 걱정하는 것입니까?

그 소리들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벌판에 문을 설치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혀들이 재잘재잘 지껄이기 시작했고, 그대의 체면은 구겨졌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어서 더욱 어렵습니다. 

그대의 초자연적인 반응은 용서해야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용서를 청하기도 해야합니다! 그 경험을 이용해서 그대는 피조물로부터 초연해져야 합니다.

그대가 고난과 경멸과… 십자가를 만나게 될 때, 그대는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에 비하면 고작 이거란 말인가?

커다란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반대에 부딪혔습니까? 이 강력하고 남성다운 기도문을, 단어를 음미하듯이 아주 천천히 외우십시오. 

“가장 공정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뜻이 행해지소서. 이루어지소서. 찬양받으소서. 그리고 만유 위에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아멘, 아멘” 

나는 그대가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 장담합니다.

그대는 꿈에 지나지 않는, 짧디 짧은 이 현세의 삶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즐거워하십시오. 그대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그대를 무척 사랑하시니 말입니다. 만일 그대가 그분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 몹쓸 꿈이 지난 후에 그분이 그대를 잘 깨워주실 것이기에.

그대는 자신이 베푼 호의에 대해 감사의 말을 듣지 못해 마음 아파합니다. 이 두가지 질문에 답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그처럼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감사의 말을 듣고자 그 호의를 베풀었던 것입니까?

그대가 왜 놀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적들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았습니다. 

라자로가 살아났을 때, 그들은 항복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생명을 준 그 사람을 죽여버리자!”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과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투쟁과 고난의 순간에, 어떤 때는 ‘선하다는’ 자들이 그대의 길을 장애물로 채울 때, 그대의 사도적 정신을 드높이십시오. 겨자씨 한알과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께 귀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제게 그 비유를 설명해주십시오 Edissere nobis parabolam” 

그러면 그대는 다가올 승리를 생각해보는 즐거움에 잠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사도직이라는 은신처 아래 깃들이게 될 새들과 부풀어오를 밀가루 반죽을 말입니다.

만일 시련을 소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대는 기쁨과 평화를 잃고, 그런 역경으로부터 어떤 영적 혜택도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대는 공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것은 감옥살이보다 더 지독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자신의 인격이 실추되었다고 고통스러워하고 이기주의, 호기심, 오해, 험담 때문에 활동할 곳을 못 찾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그대는 아주 자유로운 의지와 ‘어린이’와 같은 힘을 잊어버렸습니까? 이파리와 꽃이(외적인 활동이) 없다고 성장이 멎고 뿌리가 활동을 (내적 생활을)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하십시오. 상황이 달라질 것이고 그대는 이전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더욱 달콤할 것입니다.

꾸지람을 들었다고요? 교만한 그대 자신의 충고를 따르지 말고 화도 내지 마십시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그들이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십자가, 노고, 고난. 살아있는 동안 그대가 지녀야할 몫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입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외적투쟁이 많아서. 그대는 부분적으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 안에 있는 공범은(잘 살펴 보십시오)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거룩하신 스승의 입술로부터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를 듣지 못했습니까? 위로를 느끼십시오. 그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지이기에 그분께서 그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또 가지를 치십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Ut fructum plus afferas” 말입니다. 

당연히 그 절단, 그 가지치기는 아픕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대의 사도직이 얼마나 울창하게 성장하고, 또 무르익을까요!

그대는 근심하고 있군요. 자, 보십시오. 내적생활이나 그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사건들이나 사람들의 중요함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시간이 흐르게 내버려두십시오. 그런 후에 멀리 떨어져서 통찰력을 얻어 침착하게 사람들과 사건들을 바라보면 제 자리와 딱 맞는 몫을 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대는 좀더 공정한 사람이 되고, 또 많은 근심거리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악한 여관에서 보낸 곤혹스러운 하룻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이 지상의 삶을 그렇게 묘사했다고 합니다. 옳은 비유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어느 유명한 수도원을 방문한 외국인 여성이 그곳의 가난함을 목격하고는 마음이 그만 울적해져서 말했습니다.“여러분은 아주 힘들게 사시는군요” 그러자 수사는 이 말에 만족해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수사, 자네가 원했던 대로 됐어. 수사, 이제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렸어.’ 

내가 기쁘게 들었던 그 성스러운 수사의 말을, 그대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때, 나는 걱정스럽게 그대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불안하다고요? 절대로 안됩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잃게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쇠약. 그대는… 무너져있습니다. 쉬십시오. 외부활동을 중단하십시오. 진찰을 받으십시오. 의사의 지시에 따르고,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곧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것이고, 그대가 충실하다면 사도직을 더욱 성장시킬 것입니다.

다른 언어로 된 이 챕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