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형성

젊은 토비아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그대가 착하고, 예쁘고, 게다가 부자인(이 말은 농담삼아 덧붙인 것입니다.) 아가씨와 성스러운 혼인을 하기까지 이끌어주시도록 그대의 청춘 시기를 성 라파엘 대천사의 보호아래 두라고 내가 충고했더니, 그대는 아주 점잖게 웃더군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실지도 모르니 청년사도 성 요한의 도움도 받을 수 있도록 해두라고 충고했을 때는 그대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모릅니다.

가족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그대를 너무 엄하게 다룬다고 마음속으로 불평하는 그대를 위해, 나는 *어느 군의관의 편지 몇줄을 옮깁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양심적인 전문직업인의 태도로써 냉정하고 타산적이지만 객관적이고 환자에게 유용한 태도입니다. 또 하나는 가족들이 눈물바람 속에 소란을 피우는 태도입니다. 만일 전투중인 전선 응급치료소에 환자들이 계속 들이닥쳐 후송이 지연되고 있을 때 병상마다 가족들이 붙어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사가 적진으로 넘어가고 싶은 상황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어느 군의관의 편지: 277에 인용된 편지를 쓴 의사 후안 히메네스를 말함.

나에게는 기적들이 필요없습니다. 복음서에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그대의 의무수행과 은총에 대한 그대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그대는 기가 꺾이고, 풀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방금 그대에게 한가지 교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대가 자기들의 도움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대에게 빈 약속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기껏 몇푼 안되는 돈이어도 그대를 도와줘야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그들은 우정을 무관심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하느님만 신뢰하고, 그분을 통해 그대와 일치해있는 사람들만 신뢰하십시오.

아, 그대가 만일 자신의 야망, 자신의 허영, 자신의 쾌락… 을 만족시키려는 것과 같은 열성으로, 하느님을 진지하게 섬기기로 결심한다면!

만일 그대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면, 형제들 중에서는 꼴찌가 될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 중에서는 첫째가 될 것, 이것이 그대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 봅시다. 아무개가 전에 알고 있던 어떤 사람들이나 기질, 직업, 혹은 성격상 더 끌린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터놓고 어울리는 것이 그대에게 무슨 모욕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사이에는 개인적인 우정을 내색하는 것도 삼가십시오.

아주 훌륭한 음식이라도 돼지가 먹으면 돼지몸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천사가 됩시다. 우리가 흡수하는 생각들을 고귀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사람이 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먹는 음식을 강하고 멋진 육신이나 하느님을 이해하고 흠숭할 수 있는 능력있는 두뇌로 전환시킵시다. 

많고 많은 경우처럼 짐승은 되지 맙시다!

따분하다고요? 그것은 그대의 감각은 깨어있고 영혼은 잠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그대는 종종 양보, 숭고한 양보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그대는 종종 비타협적인 고집을 부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 또한 매우 숭고한 일입니다.

그대가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보인다면, 그대는 바보입니다. 그리고 비방당하는 원인인 그 바보스러움은 나쁜 것보다 훨씬 더 나쁩니다.

직업적 평판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종교적인 대중행사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대는 틀림없이 그들의 귀에 대고 이런 말을 속삭이고 싶었을 겁니다. “제발, 부탁인데 너무 가톨릭신자인 양 하지 좀 마십시오!”

만일 그대가 공무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대는 그에 따른 권리를 갖고 있고 또 의무도 갖고 있습니다. 

그대가 어떤 사도직으로 인해, 아니면 그 일을 핑계삼아 자신의 의무에 불성실했다면, 그대는 사도의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사람을 낚는 어부의 낚시바늘’인 직업적 신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의 사도직 모토가 마음에 듭니다. 

“쉬지 말고 일하라”

왜 그렇게 성급합니까? 그것이 활동이라고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허둥대는 것입니다!

방탕. 그대는 그대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아무 흙탕물로나 그대의 감각과 능력이 요구하는 갈증을 채웁니다. 그리고나서 그대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한 목표, 산만한 집중력, 잠든 의지, 눈을 뜬 탐욕. 

그대를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이끌어줄 계획에 다시 자신을 예속시키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쓸모있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그대는 내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마다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신의 주변환경을 감동시킬 수 있는 쪽으로(그대의 사도직) 정신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대가 살고 있는 사회에 그대의 ‘음조’를 울릴 수 있습니다. 

그때, 그대가 이 정신을 획득했을 때,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손이 행한 기적의 첫 열매들을 눈여겨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처럼,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변환경에 미치는 우리의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

그러면 제가 어떻게 ‘우리의 형성’을 체득하고 ‘우리의 정신’을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영적 지도자가 정하고, 설명하고, 사랑하게 해준 그 구체적인 ‘규칙’들을 지킴으로써 가능합니다. 그것들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사도가 될 것입니다.

비관론자가 되지 마십시오. 일어났거나, 혹 일어날 수도 있는 모든 일은 결국 선하게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까? 

그대의 낙관주의는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자연스러움. 그리스도의 신사, 그리스도의 숙녀, 그대들의 삶에 그대의 빛과 그대의 소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십시오. 별나거나 유치한 짓은 하지 말고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단순한 정신을 지니고 다니십시오.

“그런데 저의 생활이 이교도적, 세속적 환경과 대립할 때, 저의 자연스러움이 인위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요?” 하고 그대는 내게 묻습니다. 

나는 대답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의 생활은 그들의 생활과 부딪칠 것입니다. 그대가 일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고 있는 그런 대조야말로 내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바로 그 자연스러움입니다.

사람들이 그대에게 ‘단체정신’이 지나치다고 말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손에 쥐자마자 부서져버리는 그런 연약한 도구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대에게 <예수의 생애>를 선물하면서, 나는 그 책 속에 이런 헌시를 적어두었습니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찾게 되기를. 그대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를. 그대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기를’

이는 아주 분명한 세단계입니다. 그대는 적어도 첫째단계라도 시도해봤습니까?

만일 그들이 지도자인 그대가 약해졌다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들의 순명이 흔들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혼돈. 나는 그대의 올바른 판단력이 흔들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악마의 얼굴은 몹시 추합니다. 놈은 아주 영리해서 우리에게 놈의 뿔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결코 정면 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놈이 얼마나 자주 고결한 척, 심지어 영성적인 척하면서 접근하는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라.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나는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나의 영적 자녀여,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대가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피해야하는 악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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