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도직

이 점을 깨달으십시오: 그대의 사도직은 선, 광명 열성, 관용, 희생정신, 일에서의 일관성, 깊은 연구, 완전한 자기 포기, 최진보에 뒤지지 않는 것, 성교회에 대한 완전한 순종 및 완벽한 애덕을 확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이 충고는 그대를 위한 것이니, 그것은 그대가 아직 젊고 그리고 방금 그대의 길을 따라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에든 참여하시므로, 그대가 후에 그대의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게 되도록 직업적으로 뛰어나도록 해보십시오.

우리가 깨달으면 그만큼 더 남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그것을 뒷박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습니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칩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지상에서의 주님의 마지막 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가르쳐라.” 주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의 행위와 말에서, 그리고 그대의 행위와 말에서도 주님의 빛을 비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까지,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좋은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신자를 두려워하고 반대하는 일이 무척 빈번하다는 것은 뚜렷한 사실입니다.

뜬소문과 풍자를 퍼뜨리는 자들에 대해 방비하십시오. 어떤 자들은 반성의 결여로 말려들고 그밖에는 나쁜 믿음을 통해 그렇게 됩니다. 그들은 조용한 분위기를 파괴하고 대중의 의견에 해독을 끼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애덕 때문에 그런 남을 짓밟는 행위와 그 장려자를 고발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사람들과 그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자신들의 일그러진 양심과 미숙한 양심대로, "침묵은 동의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 세기가 지나가는데도 가톨릭 신앙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기 때문에 분파주의자들은 ‘광신(狂信)’이라고 부르고 아우성칩니다.

한편, 분파주의자들의 광신은 진리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시대를 달리할 때는 그 겉옷을 바꿉니다. 그들은 사실에 바탕을 둔 내용이 결핍되어 있는 단순한 말뿐인 요괴를 성교회에 대항하여 쳐듭니다. 그들의 “자유”는 사람들을 속박하고, 그들의 “진보”는 인간성을 정글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며, 그들의 “과학”은 무지를 감춥니다. 그들의 좌석 뒤에는 단지 해묵은 망가진 물건들이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그대의 믿음을 위한 ‘광신(狂信)’이 매일같이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인 진리를 위한 유일무이한 방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교양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 자신의 무지라는 무기를 휘두르다 바보가 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봉사자로 자처하는 자들과 손에 손을 잡고 행진하는 일을 알게 되는 것은 몹시 슬픕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을 따라가기는 하지마는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항해서 결속됩니다.

어떤 환경, 특히 지식인(인텔리)의 세계에서 여러 당파 공통의 지령과 같은 것이 중시되고 있으며, 이것이 명백히 감지되어 가톨릭 신자까지 이에 따를 때가 있습니다. 뻔뻔스럽게도 참을성 있게 중상을 계속하고, 그것을 펼쳐나가고, 모든 진리와 모든 논리에 어긋나면서도 교회와 사람에게, 또 조직에 대해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입니다.

매일 믿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교회의 적을 표방하는 그들을 욕되게 하소서." 주여,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우리가 전파할 결심을 하고 있는 당신 빛의 밝기로 욕되게 하소서.

가톨릭신앙이 사고가 오래되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까? 태양은 더 오래되었으나 그 빛을 잃지 않았고: 물은 더 옛것이기는 하나 여전히 갈증을 풀어 주고 우리들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설령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일지라도 역사나 사람의 생애를 왜곡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교회를 박해한 적을 찬양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확신하십시오. 칭찬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대체 언제부터 증오가 모범이 된 건지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는 대립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또는 우리 교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해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사랑을 실천해 나간다면, 그렇지 않았다면 누구이건 그리스도교에 반대하고 잘못으로 속임을 당했을 사람이 쉽게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을 사랑의 실천에 참여시키면서 마무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순진한 “폭넓은 믿음”의 이름으로의 독단론에는 굴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식으로 행동한다면 그는 자신을 성교회 밖으로 내쫓는 위험을 저지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익을 얻어내는 대신 자신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특이’하니, 그것은 이 세상의 것들과는 쉽사리 섞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현수막으로 사용될 때 아마도 가장 큰 ‘성가신 방해물’일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쉬운 말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적 능력이 부족한 곳에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성스러운 ‘간사함’을 청하십시오.

저를 믿으십시오. 교리를 일러 주는 사도직은 통상, 이를테면 모세혈관같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각 신자로부터 그 바로 곁의 친구에게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영혼마다 다 중요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든 영혼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대의 입술이 하느님을 거스르는 어떠한 무례한 말도 내지 않도록, 조언을 주시는 성모이신 복되신 동정녀께로 피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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