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대륙의 나라들을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마음이 답답했던 당신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제게 말했습니다. 이 바다 건너편에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효과가 없다니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나서 당신은 스스로 답을 내놓았습니다. 한없이 상냥하신 하느님은, 다루기 쉬운 도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가엾어라, 라고 당신은 생각했습니다.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외쳐주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눈이 멀었으며, 비참한 나에게조차 보이는 것이 왜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왜 최상의 것을 바라지 않느냐고.

기도와 희생을 바친 후에-당신의 의무이니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을 뜨고 한 사람씩 설명해 주십시오.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걸어가시는 주님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분발하기 시작했지만 서서히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시야를 계속 좁힌다면, 머지않아 초라한 자신의 껍질에 갇히고 말 겁니다. 사사건건 마음을 넓혀 사도직에 대한 의욕을 높여야 합니다. 백 명이면 백 명이 모두 우리의 관심사이니 말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아버지나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잘 대해 주시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언제나 대모험을 꿈꾸던 당신은 훌륭한 사업, 당신을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사업에 참여하였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사도직에 힘씀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십시오.

사도직으로 뛰쳐나갈 때에 확신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사도직이란 항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진정한 기쁨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와 다른 인종, 천차만별 환경과 직업 등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의 사도로서의 소명은 인간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 매우 값진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주님의 제자들이 처음 가르침을 받들어 기적을 행하던 장면이 고스란히 재현된 듯합니다.새로운 길을 제시함에 있어 외국어로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의 뇌리에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은, “바르티아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이 행복하다는 듯이 하느님께 다가갔다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내 말을 잘 듣고 메아리처럼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하느님과 사귀는 것은 하느님과 가장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배려, 즉 사도직이란 사치스러운 것도 소수자의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이걸 알게 된 지금,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생활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에 따라 생활 방식을 갖추십시오

자연스러움, 성실, 기쁨. 이들은 곧 사도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들입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 이것은 예수님의 첫 번째 열두 제자를 위한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호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첫 번째 제자들은 부족한 지식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일 ‘사도직’을 계속하지 않기 위한 수많은 핑계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손에 맞는 장갑처럼 해당합니다.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을 하시는 것은 지금도 하느님이시라는 것. 다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사도직으로서의 소명은 하느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계속해서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즉, 기도, 희생, 공부 혹은 일, 우정, 초자연적인 시각… 내적 생활.

제가 말하는 ‘우정의 사도직’이란, ‘개인적이고’, 희생을 아끼지 않는, 성실한, 즉 일대일의, 진심어린 마음의 우정입니다.

우정과 신뢰(터놓고 하는 이야기)의 사도직의 첫걸음은 이해하는 것, 섬기는 것, 그리고 교리면에서 성스러운 비타협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그들만의 작은 세계 안에다 자신들을 가둬두지 못합니다. 그러한 제한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모든 영혼에 도달하기 위해 부채같이 펼쳐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친구들의 써클을 창출해야 하고 一 그리고 넓혀야 하고 —그 친구들에게 자기 직업상의 신망을 가지고, 자기 행위를 가지고, 자기 우정을 가지고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그 직업상의 신망과 그 행위와 그 우정의 방편을 빌어 주님의 영향력을 행사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만의 환경에 틀어박힐 수 없습니다. 그런 지각 갇혀있다니 슬픈 일이 아닙니까? 스스로를 부채처럼 펴고 모든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친구들의 사도적 모임(써클)을 창출해야 하고 一 그리고 넓혀야 하고 — 자신의 업무에서 좋은 평판이나 행동이나 우정으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업무상의 좋은 평판이나 행실과 우정을 통해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곳에 불을 붙이는 새빨간 석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불타오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그곳의 영적 온도를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 자신이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영혼에 대한 열성이 있을 때에는 좋은 사람들을 언제나 찾을 수 있고, 기름진 땅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변명은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대의 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알건 모르건 간에 그리스도를 찾고 있으면서 주님을 찾아내지 못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일러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주님에 관해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대가 강렬하고 끊임없는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면 그대의 내적생활에 마음을 쓴다고 저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주님께 가까이 있다고 저에게 확언한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길은 어렵다, 라고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당신은 신이 났습니다. 십자가야말로 길이 진품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표시임을 기억해낸 이유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친구는 길의 험한 면만 보고 “내 멍에는 편하다”는 예수의 약속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나게 해주십시오. 그 약속을 눈치채면 모든 것을 바칠지도 모르니까.

그 사람 시간이 없다고요? 그게 낫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시간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훌륭한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고 예수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는 당신은 생각해야 합니다.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 진실로 섭리적이고 분명한 부름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날마다 다음 말을 묵상하십시오. 사도는 항상 또 한사람의 그리스도, 그리스도 자신이어야 합니다.

자기를 그리스도와 맞대면하는 자리에 놓았다고 그가 그대를 나무랐다 해서, 또는 그가 격분해서 “이제 저는 결심을 하지 않는 한 마음 편히 살 수 없다”고 말을 더 보탠다 해서 놀라지 말고 겁먹지 마십시오.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를 진정시켜 보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아마 옛날의 불안, 즉 양심의 소리가 전면에 떠올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전영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에 관해서 그대가 말했기 때문에 그들이 분개합니까? 글쎄요, 만약에 그대가 사도 중의 사도가 되는 소명을 받았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대가 다른 “언어”를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대에게 자연스러워지라고 충고합니다.

문제는 그대의 신앙이 인위적으로 형성된 점입니다.

고통을 일으키기 원치 않기 때문에, 그대는 하느님에 관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관해서… 말을 꺼내기를 주지하는 것입니까? 부르심을 행하는 이는 그대가 아니고 주님이심을 그대는 잊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그들을 내가 잘 알고 있다.”

더우기 저는 안일을 추구하는 정신이나 뜨뜻미지근함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 그대는 하느님의 우정보다는 보잘것 없는 인간적인 우정을 원합니까?

그대는 영혼들에 대한 열의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한 사람한테, 그리고 다른 한 사람한테,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한테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겁을 먹었고, 다른 한 사람은〈분별 있는 사람〉과 상담해 잘못된 지도를 받았습니다.참고 계속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누구 하나도 후에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변명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답답하게 느끼는 거 압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사람도 있고, 시간을 거쳐 응할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양팔을 벌리고 기다려주십시오. 그 성스러운 답답함에 많은 기도와 희생의 조미료를 더하십시오. 다가올 때는 더 젊고 관대해지고 안락한 마음을 버리고 더 용감해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사도직에서의 필수요건은 신앙이고 신앙은, 비록 열매가 늦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지속성에서 자주 보여집니다.

만약에 우리가 인내하고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속해서 해나간다면,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혁명의 표시가 당신 주위에 나타날 것입니다. 약간은 부르심에 따라갈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내적생활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고, —가장 약한— 그밖의 사람들은 최소한 미리 경고를 받을 것입니다.

진정한 홍분의 날들: 세 사람 더!

예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대가 나를 미소짓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대가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새 땅에 가서 갈라진 틈을 하나 열 가능성에 대해 저는 열광적입니다. 아마도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겠지요··· 저는 혹시 달에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찾아보고 싶습니다…

주님께 그대의 그 사도직의 열성을 더 키위 줍시사고 청하십시오.

이따금씩 저들 잠든 영혼을 보면서 그들에게 소리쳐 주고 싶고, 그들이 알아차리게 해 주고 싶고, 그들이 빠져든 그 무서운 혼수 상태에서 그들을 깨워 주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느낍니다. 그들이 길을 찾지 못하고 지팡이로 더듬고 있는 장님처럼 걷는 꼴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픕니다!

완전하신 사랑에서 우러난 예수님의 눈물이 예루살렘에 얼마나 뿌려졌는지를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당신 소명의 사도직적 깊이 속으로 매일 더 파들어가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과 제가 사람들에게 소리내어 선포하도록,

20세기 전에 선도(先導)하는 깃발을 올리셨습니다. 그것은 정녕 성실한 마음을 지니고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대는 이보다 무슨 더 분명한 초대가 필요합니까.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리고 저들 그리스도를 아직도 모르는

25억 영혼들의 생각에도!

“저에게는 저를 도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영적으로 병들고 마비된, 쓸모있을 수 있을 —그리고 쓸모 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영혼들에게 무관심한 채로 남아있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을 다시 한번 불붙게 할 새로운 성령강림절이 오도록 저와 함께 청하십시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 저는 매일 더욱 똑똑하게 보게 됩니다마는, 가족의 구속은 그것이 그대의 지극히 사랑스런 마음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십자가의 근원이고,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인내력을 거스르는 직접적인 유혹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전직으로 비능률적인 이유이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자기포기를 해치는 극단적인 압력입니다.

땅을 파헤쳐 밭고랑을 내는 보습(밭가는 쟁기)은 씨도 못보고 수확도 못봅니다.

결심한 후 당신은 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 일은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자문했고, 게다가 그 후로도 의심과 실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나 조리 있고 분명하며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앳된 당신의 물음에 대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를 보면서 당신은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예수께서는 틀림없이 이렇게 첫 열두 제자들을 돌봐 주셨을 것이다.”

소명을요, 주님 더 많은 소명을요! 를 뿌린 것이 나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우리 손을 가지고 씨를 뿌린 것은, 예수님, 당신이셨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 고는 당신께서 열매가 익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열매는 오래 가리라”는 것입니다.

정직하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그들을 잡으려고” 시도해 왔다고 그대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이 그대가 하려고 원하는 바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들이 소명을 얻지 않았다면 —만약에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지 않는다면— 그들은 오지 않을 것이고, 또 만약에 그들이 소명을 얻었다면, 복음서에 나오는 돈 많은 젊은 사람같이 끝내고 만다는 것은 그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혼자서 슬프게.

한 사도로서 그대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은총과 하나하나의 영혼이 만나는 장소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대는 또 저 일부 사람들의 생애에서 가장 엄숙한 기회인 그들이 그리스도와 만나는 데에 있게 됩니다!

당신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택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다음 점을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눈사태처럼 몰려와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날카롭게 묻고 정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당신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 그대의 사도적 정신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비결이 있습니다: 한 주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루 앞을 위해, 이 순간과 그 다음 순간을 위해 정확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의 활동에 큰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대는 백 번째 양을 찾으러 나간 착한 양치기처럼 사람들을 찾으러 가야 합니다. 게다가 불려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부르십시오. 그러니 그대의 친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활용하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해 주는 겁니다.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만 할 뿐, 사도적 열성으로 넘쳐흐르지 않는 내적 생활을 하고 있다면 침착할 때가 아니라고.

“하찮은 일"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용서받을 일이 아닙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교리에 관련된 사도직: 그것은 언제나 그대의 사도직일 것입니다.

성령 강림의 훌륭한 점은 그것이 모든 길을 성화(聖化) 했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독점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만을 높이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이란 온갖 종류의 말과 방법과 형태로 신을 만나는 것이지 강요된 획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이렇게 썼습니다: 북부지방으로 가고 있던 한 젊은 사람이 우리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광부였습니다. 그는 노래를 잘 불렀고 우리들과 어울렸습니다. 그가 내릴 역에 도착할 때까지 저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가 내릴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네들과 함께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저는 곧 저 “주님, 저희들과 함께 머무시지오!”를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 그에게 요구하기를,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동반자로서의 우리들 하나하나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뵈옵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중들은 떠나가서 “정당화된 불평의 길”로 내려가고 있었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계속합니다.

그것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영적으로나 또는 물질적으로 청빈한 사람들에게 불만을 품도록 만들었나요!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 사이에 한번 더 자리잡고 계시게 될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교사가 가져야 할 소망. 많은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알게 된 일들을 이번에는 단시간에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가르치고' 싶고 ‘정성껏 가르치고’ 싶다면 학생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그런 마음이야말로 사도직에 적합한 토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토가 있습니다. “나그네여, 스스로의 길을 걸어라” 모래땅, 하느님이 제시한 길을,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충실히 사랑의 마음으로 걸으라고 말입니다.

신약 성경의 가르침들 하나하나가 대단히 특수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성부 오른 편으로 올라 가사기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라”, 그리고 그들은 충만한 평화 속에 남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고, 그래서 이 세상을 구원할 진리를 가르치는열성있는 강론자가 되기 위해, 사도들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주위에 모여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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