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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친구들»에는 인내를 주제로 하는 3 항이 있음.

강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자기 덕행의 보상을 받으려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는 인내롭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불굴의 용기를 통하여 인간적이고 신적인 인내의 덕을 깨닫게 됩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생명을 얻는 것은 인내에 달려 있으며, 이 인내야말로 실제로 모든 덕목의 바탕이고 보호자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통하여 확실히 생명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현재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그리고 이 인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좋은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영혼들도 시간이 흘러야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영적 투쟁을 하는 하느님의 자녀는 기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표정, 포기와 체념의 슬프고 침울한 얼굴을 하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일할 때나 쉴 때나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늘 생각하며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과도 기꺼이 맞붙을 수 있어야, 참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투쟁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언제나 승리하시는 하느님과 결합되어 우리도 승리자가 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충실하게 따르려고 노력하였을 때에 저에게는 아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2-4).

가끔은 인내와 끈기로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도 영적 투쟁에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전략입니다. 더욱더 희망을 지니십시오. 피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의 내적 생활에는 패배의 아픔도 있을 것이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러한 불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들을 이겨 낼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주셨습니다.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우리는 모두 그 수단을 이용해야 하며, 필요할 때마다 언제나 또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매주,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거룩한 용서의 성사, 참회의 성사를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은총의 옷을 차려 입고 산과 산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으며(시편 104,10 참조), 그리스도인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의 언덕을 도중에 멈추지 않고 오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고해성사를 받으면서 우리 주님께 더욱 큰 희망을 갖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면,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 낙관적인 사람들이 됩시다. 희망의 힘으로 무장한 우리는 증오가 뿌려 놓은 더러운 오물들을 깨끗하게 씻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쁨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아름다움과 공정함을 펼쳐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도 같은 아름다움을 주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르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루카 1,48). 인간적으로 말해서,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의 눈에 그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유딧, 에스테르, 드보라 같은 구약의 위대한 여성들은 당시 사람들의 환호와 칭송을 받으며 이 세상에서도 인간적 영예를 누렸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성모님의 화관은 당신 아드님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였습니다. 성모님에 대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으실 때까지 남은 지상 생애 동안 조용하게 지내셨다는 점입니다. 성모님을 잘 알았던 루카 성인은, 그분을 예수님의 첫 제자들과 기도 안에서 가까이 계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칭송받으실 분이 이 지상 생애의 끝 날까지 이렇게 사셨습니다.

성모님의 희망과 우리의 조급함은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우리는 너무도 자주 하느님께 우리의 작은 선행에 대한 보상을 당장 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우리 앞에 첫 번째 어려움이 보이자마자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자주 노력과 희망을 포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