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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친구들»에는 초대 그리스도인를 주제로 하는 5 항이 있음.

저는 지금 허황된 공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하고 아주 명확한 현실입니다. 우리 구원의 첫 시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하느님의 계획에 적대적이고 극히 이교도적인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매우 분명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받은 소명의 위대함을 잘 요약한, 어느 익명의 저자가 쓴 글을 음미해 봅시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맺는 관계는 영혼이 몸과 맺는 관계와 같습니다. 영혼이 몸 안에 있지만 육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속적이지 않습니다. 영혼이 몸의 모든 부분에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모든 도시와 고을에 삽니다. 영혼이 본질적으로 그러하듯이, 그리스도인은 내적으로 일하고 눈치채지 못하게 지나갑니다. … 불멸의 영혼이 지금은 멸망해 가는 집에 머물고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멸망해 가는 것들 가운데 순례자로 살고 있지만 그 눈은 불멸의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혼이 고난을 겪음으로써 아름다워지듯이, 그리스도인은 박해 속에서도 그 수가 나날이 늘어납니다. … 그리고 영혼이 몸을 스스로 떠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자신의 임무를 포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세속 일을 등한시한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도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확신하건대,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은 거룩한 섭리와 지혜에 따라 질서 지어지고 허락된 일상생활 속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일을 훌륭하게 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인간적 초자연적 열정으로 일을 시작할 때 기울인 노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면, 만일 우리가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일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내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가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참으로 원한다면, 가장 잘하는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우 성실하게 인간적 수단들을 사용할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주님 마음에 들고 금줄 세공처럼 훌륭하게 마무리된 완벽한 성과를 주님께 봉헌하는 데 필요한 초자연적 수단까지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복수를 삼가고, 진심으로 용서를 베푸는 일은 모두 그 당시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 영웅적이고, 이상한 행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속 좁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고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구속 사업에 결합하기를 바라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 같은 제자들이 위대하고 진지한 사랑, 더욱 고상하고 더욱 고귀한 사랑을 지닐 것을 가르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를 사랑하신 것과 똑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거룩한 사랑의 본보기를 따를 때에만, 우리는 서툴지만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더욱 고귀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열렬한 사랑을 얼마나 훌륭하게 실천하였습니까! 그 사랑은 단순한 인간적 연대 또는 자연스러운 친절함의 한계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그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2세기에 테르툴리아누스는 자신의 저술에서 그 당시 신자들의 행동을 보고 이교도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묘사합니다. 그 행동이 초자연적 그리고 인간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그들은 자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아라.”

지금 여러분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또는 날마다 수많은 일들에서 여러분을 바라볼 때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그러한 찬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하느님의 강력한 권유에 마땅히 드려야 하는 응답을 마음으로부터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상황을 바로잡을 때가 왔다고 여기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10).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제가 즐겨 묵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즐겨 묵상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명확하고 불변하는 기도의 본보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그리스도의 첫 추종자들의 삶을 설명하는 구절에서 되풀이하여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베드로 사도가 담대하게 진리를 선포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들은 기도하였습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사도 12,5).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당시에도 기도는 내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성 야고보는 묻고 답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야고 5,13). 성 바오로는 이렇게 요약하여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기도하는 일에 결코 지치지 마십시오.

이 좋은 기회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놀라운 사도적 열정을 증명하는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리며 성찰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그분의 명성이 이미 수많은 도시와 마을에 퍼진 지 사반세기도 되기 전이었습니다.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사도 18,24-25).

그리스도의 빛이 희미하게나마 벌써 이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우리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갈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더욱 온전한 신앙을 얻고 우리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인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는 그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거나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어. 그를 가르치는 일은 우리와는 상관없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열심히 사도직을 수행하는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에게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습니다”(사도 18,26).

그다음에 바오로 성인이 있습니다. 그의 행동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선포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페스투스와 아그리파스 앞에서도 용맹하게 선언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이날까지 이렇게 서서 낮은 사람에게나 높은 사람에게나 증언하고 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이야기한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곧 메시아께서 고난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첫 번째 분으로서 이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사도 26,22-23).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신앙에 관하여 침묵하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도로서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박해자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이 구원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담대하게 그는 아그리파스에게 묻습니다. “아그리파스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사도 26,27). “아그리파스가 바오로에게, ‘당신은 조금 있으면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게 만들겠군.’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바오로가 대답하였다. ‘조금 있든 오래 있든, 나는 임금님만이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 사슬만 빼고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사도 26,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