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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하느님의 친구들»에 시간 사용 → 직업에 각박함과 성과 항이 있음.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마태 20,1).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꾼을 구하려 여러 차례 되돌아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부름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해 질 녘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그분이 약속한 품삯은, 달리 말하자면 그분 자신의 모습이요 그분을 닮은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모습이 돈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러합니다. 그분은 각 사람의 처지에 맞게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우리의 경우를 보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고, 신앙 안에서 자랐으며, 우리 주님께 명백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손짓하는 것을 느낀다면, 아무리 마지막 시간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시장에서 서성대거나 햇볕을 쬐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단 1초도 남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넓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듣지 못한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남는 시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자연적으로 말해서, 영적 불구자일 수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의 가족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선행을 소홀히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안으로 다시 돌아가실 때에 시장하셨습니다. 시장하신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거기로 가십니다. 마르코 성인은 그때가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마르 11,13)고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시기에는 아무 열매도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아시면서도, 가까이 가보십니다. 그러나 나무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아무런 열매도 없는 것을 보시고는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마르 11,14).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니요! 하느님의 지혜이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신 이유는, 그것이 열매는 없고 오직 겉보기에만 풍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으로 삼읍시다. 열매 맺지 못하는 데에는 아무런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제가 잘 몰라서요.”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안 됩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을 것입니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제가 재능이 없어서요, 여건이 안 좋아서요, 주변 상황이…” 이것들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릇된 사도직의 잎들만 무성한 자기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얼마나 가엾은지! 그런 사람은 열매 맺는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잘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들을 정리하고 온갖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직접 노력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 초자연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야 선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열매 맺는 방향으로 힘껏 노력하고 있는지 주님께 여쭈어 봅시다. 크고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잎만 무성할 뿐 가까이 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단지 나뭇잎만 있을 뿐,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영혼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자신들의 갈망을 채워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가엾은 처지에 있지만, 하느님께 충분한 가르침과 은총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한 번 더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1코린 7,29). 지상의 생애는 짧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기회를 잘 활용하겠다는 선한 의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다음부터는,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하신 책망을 우리에게 하실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황새도 제철을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때맞춰 돌아오는데 내 백성은 주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구나”(예레 8,7).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에는 나쁜 날도 없고 시기가 좋지 않은 날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섬기기에는 모든 날이 좋습니다. 나쁜 날이 되는 것은, 사람이 날을 망치는 경우뿐입니다. 믿음 부족, 게으름, 우상숭배 때문에 하느님의 일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시편 34,2). 시간은 녹아 없어지는 보물입니다. 시간은 산의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처럼 우리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갑니다. 내일은 머지않아 또 하나의 어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에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많습니까!

어떠한 변명도 소용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너그럽고 인내로이 우리를 가르치셨고, 비유들을 통하여 당신의 명령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필립보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질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요한 14,9) 이제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가 왔습니다.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마태 20,12)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경향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쉽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또는 휴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 지나친 걱정을 합니다. 물론 휴식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활력으로 일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이야기했듯이, “휴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력이 덜 요구되는 다른 활동들에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우리 어깨 위에 놓인 놀라운 책임들에 대하여 너무 느긋하고 그것들을 망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또한 그릇된 합리화 속으로 숨으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반면에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결코 쉬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전에 노예였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이야기를 묵상해 봅시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에페 6,6-7).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주인에게 복종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마땅히 따라야 할 좋은 충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 빛을 주십사고 청합시다. 우리의 직업이 우리 자신의 성화 소명에 필요하고 또 유익한 것이 되도록 하는 그 신성한 의미를 매 순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고 간절히 청합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룩한 자부심을 지니고 참으로 일하는 사람임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특사로 행동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일을 마치지 못한다면, 만일 다른 사람들보다 직업적으로 덜 노력하고 덜 희생한다면, 만일 부주의하고 믿음직하지 않으며 경박하고 무계획적인 사람으로 불린다면, 우리는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영성 생활과 관련된 다른 의무들도 성공적으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며, 아마도 더 어려워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제가 자주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는 감실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를 비인격적 기도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의 명상을 바로 지금 우리 주님과의 인격적 대화로 승화시키고 싶다면(이를 위해 소리 내어 하는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익명의 망토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내맡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교회에 가득한 군중 속에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를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무의미한 중얼거림, 진실한 내용이라고는 없는 반사적 습관에 지나지 않은 공허한 말소리로 추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일 또한 인격적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나누는 참된 대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일을 통해서, 일 안에서 거룩해지고자 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일이 인격적 기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울이는 주의와 관심은 비인격적이거나 판에 박힌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날마다 여러분의 일에 영감을 주는 거룩한 자극이 곧바로 시들고 소멸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의 기억은 스페인 내전 당시 전선으로 향하던 여정을 떠올립니다. 저는 아무런 지원 물자도 없었지만, 사제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면 어디든지 갔습니다. 그때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도덕적 해이와 게으름을 정당화할 구실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제 역할은 단순히 금욕에 관한 충고를 주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하나입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일깨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들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여기 지상에서의 행복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활용하여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입니다. 또한 전쟁을 자신의 삶에서 닫힌 괄호로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게을러지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마치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서처럼 참호와 초소에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군 임무와 양립할 수 있는 일, 예컨대 외국어 공부를 하도록 제안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를 그치지 말도록, 자신들이 행한 모든 일이 하느님의 일이 되도록 힘쓸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제가 큰 감동을 받은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저의 제안에 훌륭하게 응답한 군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굳건한 정신은 참으로 칭찬할 만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마태 20,22)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도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일을 기도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하느님께서 벌써 들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 영혼은 일상생활의 한가운데서 침묵 중에 기도를 올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극기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희생을 봉헌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라고 요구하십니다. 재미는 없더라도 중요한 일을 먼저 하고, 세세한 일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포기하고 싶더라도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자신의 임무를 끈기 있게 완수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이 모든 일로써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상이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장소에 십자가를 두어 여러분이 내적 기도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정신을 일깨우고,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이 섬기는 삶에 관하여 배울 수 있는 교과서로 삼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관상기도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면, 여러분은 곧바로 주님의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니게 될 것이며,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 거룩한 길들을 온 인류에게 활짝 열어 보이는 임무를 맡기셨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일로써 모든 대륙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일하는 시간 시간을 봉헌함으로써 먼 지역에서 신앙의 싹이 트도록 도울 수 있으며, 신앙 고백을 잔인하게 금지하는 나라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빛이 희미해져가고 영혼들이 무지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전통적 그리스도교 국가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의 일하는 시간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끈기 있게 몇 분이라도 더 오래 주님께 시간을 봉헌하십시오. 간단하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여러분은 침묵 속의 기도를 사도직으로 바꾸는 것이며, 이제 여러분에게 그러한 기도는 지극히 감미롭고 자비하신 주 예수님의 성심과 하나 되어 고동치는 심장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