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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느님의 친구들»에 십자가 → 십자가에 대한 사랑 항이 있음.

우리 주님께서 요구하신 ‘온전한 내려놓음’과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측면, 곧 우리의 건강에 대해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은 대부분 젊습니다. 여러분은 넘치는 에너지로 인생의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사정없이 흐르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마침내 노쇠해질 것입니다. 더욱이 언젠가 우리는 누구나 병에 걸리고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육체적으로 건강한 ‘좋은 시절’을 감사하게 여긴다면, 사람들이 나쁜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그러한 일들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간단하게나마 저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약해집니다. ‘저들은 나를 제대로 돌보아 주지 않는구나. 아무도 나를 배려해 주지 않아. 나는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악마는 어느 각도에서나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병들면, 악마는 일종의 정신병을 일으키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사람들을 멀리 떨어트리고 괴롭다는 생각이 들게 하며, 사람들이 초자연적 시각으로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모아놓은 (자기 영혼을 위한) 귀중한 공로를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바라신다면, 우리가 구원의 십자가에 더욱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담금질을 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오랜 기간에 걸친 준비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날마다 자기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함으로써,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에 질병과 불행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매일매일 기회를 활용하도록 합시다. 필요한 것들 없이도 지내보고, 자꾸만 찾아오는 작은 고통들도 감내하며, 자발적인 고행도 해 보고, 그리스도인 덕목들도 실천해 봅시다.

이렇게 쉽지 않은 현실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는 이유는, 여러분 행동의 동기를 주의 깊게 성찰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모든 것이 하느님과 여러분의 동료들에게 봉사하도록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을 지나가셨음을, 지나가시면서 우리에게 사랑의 눈길을 주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2티모 1,9).

그러므로 여러분의 지향을 정화하십시오.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고,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십시오. 이러한 생각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수천 번 되풀이하여 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단순히 어려움과 고통을 (그것이 신체적인 것이건 윤리적인 것이건) 견디는 단계를 넘어 그것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비롯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하느님께 봉헌한다면, 그것들이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으리라고 장담합니다.

이제 우리가 짊어진 십자가는 더 이상 아무런 이름도 없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구원자께서 몸소 그 십자가를 짊어지셨음을 알기에 위안을 받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협력하여야 합니다.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던 시몬은 마땅히 휴식을 누릴 자격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도와 자신의 어깨를 빌려드려야 했습니다(마르 15,21 참조). 사랑에 빠진 영혼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한 키레네 시몬이 되어, 그분의 고통받는 인성에 동참하고, 누더기 상태로 전락하는 것이 결코 불행이 아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과 가까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어 이 일을 하도록 선택하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덕분에 오푸스데이 안의 제 자녀들이 놀라운 기쁨을 누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일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야기하였고, 저는 이 명백한 진실에 대하여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다른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복은 그들이 결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행에 직면하여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결점과 나약함에도 희생정신으로 살려고 날마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쉽고 더 즐거운 것이 되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더욱더 닮아 가고 그분을 알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참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행동하는 왕다운 길을 진지하게 출발하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거룩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주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을 지탱해 주는 핵심 기둥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일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경고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사는 데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성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겪은 고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2코린 11,24-28).

주님과 나누는 대화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은 날마다 일어나는 일상적인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극심한 역경과 영웅적 업적을 상상하거나 이론적인 공상을 하는 것은 피하려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언제나 우리가 움켜쥐려고 해도 빠져나가고 그리스도인에게도 금보다 더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들은 바오로 사도가 겪은 어려움들과 견주어 볼 때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횟수도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심, 비열함, 정욕, 쓸모없고 우스꽝스러운 자만, 그 밖의 많은 결점들과 약점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낙심하고 말 것입니까? 전혀 그럴 것이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우리도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하느님이시요 인간이신 주님께서 활동하시는 장면들을 음미하십시오. 인간으로서 또 하느님으로서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용서를 베푸시고 당신 자녀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놀라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오늘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언제나 참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느낄 수 있고 눈치를 챌 수 있으며, 심지어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되는 실패에도 또다시 일어나 전진하는 한 하느님의 보호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내적 생활의 본모습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그리고 외적인 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을 상이 없을 것입니다. “경기를 하는 사람도 규칙대로 경기를 하지 않으면 승리의 화관을 얻지 못합니다”(2티모 2,5). 그리고 “싸울 상대가 없으면 진정한 싸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이 없으면 상도 없을 것입니다. 패배하는 자가 없으면 승리하는 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투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사도직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그리고 나중에 십자가 위에서 조롱받으시고 버림받으시는 그 극심한 수난의 순간들을 묵상하면서, 이런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제자가 되려면 그분의 충고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저에게 십자가가 없는 날이 하루도 없게 해 주소서!” 그러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내면은 더욱 강해지고 우리의 죄악을 넘어 하느님의 편이 될 것입니다.

예컨대, 못을 하나 잡으십시오. 여러분이 망치로 벽에 못을 박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으면, 거기에 무엇을 걸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우리가 희생을 통해서 단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만일 우리가 온갖 어려움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그것을 활용한다면, 어렵고 불쾌한 일들이 엄습하여 고통스럽고 불안할 때에 야고보 사도와 요한 사도처럼 큰소리로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마르 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