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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집착 → 내려놓음의 훈련 항이 있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묘한 가짜 문제들과 요구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사기, 변덕, 편의주의, 게으름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빠른 걸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려면, 우리 앞길을 방해하는 장애물과 무거운 짐을 없애야 합니다. 세상 것들을 갖고 있으면 마음의 가난은 멀어집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헛된 망상에 속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무엇이 충분한지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적정선을 넘으면 마음의 편안함이 아니라 근심이 생깁니다. 그것은 당신을 드높게 해주기는커녕, 짓누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충고를 할 때에, 저는 예외적이거나 복잡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종잇조각을 책갈피로 쓰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 종이에 하느님의 현존을 잊지 않게 도와주는 간절한 기도를 정성스럽게 쓰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은 그 보물을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 허접한 종이들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저의 부족한 점들을 낱낱이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도 저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기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영적 지도자를 찾아가 상담을 받을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때때로 최선의 치유책은 짧은 시간이나마 어떤 것 없이 지내는 작은 극기입니다. 또는 출퇴근 등 이동을 할 때에 가끔은 통상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절약한 돈으로 적은 금액이나마 자선을 베푸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여러분이 세상 것들을 내려놓을 마음을 참으로 지니고 있다면, 효과적이고 지나치게 야단스럽지 않은 방법을 찾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마음을 열어 고백하고 싶은 것 하나는, 제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입니다. 저는 그것을 최고의 스승이신 분에게 배웠고, 그분의 모범을 참으로 충실하게 따르고 싶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과 부드러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복음사가는 그분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요한 13,23)라고 묘사하지 않았을까요?

다음의 요한 복음 말씀을 되새기면서 강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요한 12,1-3). 마리아는 지나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통해서 크고 넓은 마음을 환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반면에, 유다 이스카리옷은 ‘저 비싼 향유를 저렇게 낭비하다니’ 하면서 한탄하였습니다. 그가 향유를 낭비한다고 생각한 것은 “삼백 데나리온”(요한 12,5)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내려놓음’은 우리를 하느님과 이웃에게 넓고 후한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데 적극적이고 지혜롭게 투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밝혔듯이, 그리스도인은 넓고 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 동시에 실제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신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들의 것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빚을 지고 있어서 그렇게 결정하였습니다. 다른 민족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의 영적 은혜를 나누어 받았으면, 그들도 물질적인 것으로 성도들을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로마 15,26-27).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아무 대가 없이 내어놓는 이들을 색안경을 쓰고 보거나 못마땅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금전적인 면까지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 9,7-8).

그리스도 예수님의 고난에 더욱더 가까이 동참하는 성주간 동안, 우리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신”(루카 2,19) 성모님처럼 될 수 있도록 복되신 어머니께 간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