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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충실성 → 하느님에 정의 항이 있음.

우리의 행동에 빛을 밝혀 주는 덕들에 관한 이 놀라운 교훈들을 활용하기 위하여 복음서의 장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은 위선적이고 알랑거리는 말에 이어 요점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마태 22,17).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영악함에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무엇이 옳고 적절한지 또는 허용할 수 있는 것인지 말해 달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속이려는 마음, 예수님이 지배자들을 미워하게 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를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18-21).

우리 주님의 명쾌한 답변에서 볼 수 있듯이,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사람을 섬기는 일 사이에,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과 종교적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충돌이나 대립이 없습니다. 또한 지상의 도시들을 세우고 발전시키는 일에 투신하는 것과, 천상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이 세상을 통과하고 있다는 확신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없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러한 삶의 일치는 일상적인 가정생활, 사회관계, 직업에서 자신을 성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본질적 조건입니다. 예수님 역시 어떠한 분리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마태 6,24).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여 그분만을 선택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리는 동시에, 정의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웃에게 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느님을 지향하여야 합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 5,6)의 기준이며, 정의의 덕을 시기와 분노의 외침이나 이기심과 탐욕의 부르짖음과 구별하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최고의 불의는 우리의 창조주와 구원자께서 주시는 풍부하고 놀라운 선물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참으로 정의롭고자 한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는지 자주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어리석게 보일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호의에 보답하려는 열망과 감사의 마음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1코린 4,7)

이렇게 아버지에게 효도하려는 착한 정신이 우리 안으로부터 생동할 것이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말을 건네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선자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과연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예레 18,6)처럼 무조건 하느님 앞에서 순종하고, 겸손하게 고백하십시오.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십니다!’ 그리고 만일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입거나 동료 때문에 부당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면, 기꺼이 기쁨의 찬가를 부르십시오. ‘하느님은 지극히 정의로우시고 사랑스러우십니다. 그 정의와 사랑을 이루시고 찬미받으시며, 만물 위에 영원히 찬양받으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