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4«하느님의 친구들»에 용기 → 사랑의 힘 항이 있음.

하느님 앞에서 용기 있게 자신을 성찰한다면,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날마다 자신의 결점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그것들을 없애려고 힘쓴다면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며, 비록 뿌리까지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그것들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나약함을 넘어서, 만일 여러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상응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중대한 단점들을 치유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들처럼 나약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아무리 그것이 끔찍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너그럽게 대할 것이며, 동시에 더욱 간절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위선자들이 주님께 미끼처럼 던진 말처럼 스승님의 본보기를 성실하게 따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스승님께서는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마태 22,16). 다시 말하자면, 비록 하느님의 뜻에 따라 (때로는 그것이 단지 인간적 이유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일은 있을지라도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마태 22,16).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십시오.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참으로 진실하게 하느님의 길들을 보여 주라는 뜻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의 결점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제 결점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 주님께 충실하고자 애쓰면서 이런저런 잘못들을 고치기를 열망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말하기 좋아합니다. 우리의 결점들을 제거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길들을 가르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약점들이 있지만, 먼저 삶으로 증거를 보여 주고, 그다음에는 가르침으로 증언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행적과 가르침”(사도 1,1)을 보여 주신 것과 똑같습니다. 그분은 행동으로 시작하셨고, 나중에 설교를 하셨습니다.

제가 사제로서 여러분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무한히 선하시고 영원하신 아버지시므로 여러분을 더욱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었고, 제가 여러분을 책망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그분의 양 떼를 사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저를 본받고는 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를 할 때나 개인적으로 대화할 때에 어떤 결점을 지적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도록 도우려는 것이 저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에게 덕행의 부족을 일깨울 때에, 저 자신도 동일한 의무를 짊어지고 있음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아주 성급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실수를 하는 사람은 똑같은 잘못을 백 번도 더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실패를 이용하여 더욱 조심스럽게 미래를 살피고, 선행을 배우며, 더 위대한 성덕을 추구하려는 결심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면서 겪는 실패들과 성공들을 통하여 언제나 사랑을 키우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리스도인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겠다는 결심을 더욱더 굳건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고귀하고 충실하게 노력할 때에 명예와 책임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 주변의 거짓 신도들에게서 나오는 반응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정의로워지려면, 자선을 행하려면, 그리고 하느님과 모든 이웃을 섬기려면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지혜는 덕들의 어머니요, 온갖 선한 습관의 길잡이입니다.

오늘 주님과의 대화를 마치면서 성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합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7-39).

성경은 이 사랑에 대하여 열정적 찬가를 부릅니다.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아가 8,7). 이 사랑이 마리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온 인류의 어머니가 될 만큼 풍요로워졌습니다. 이 동정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모든 자녀를 배려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하시며 아주 사소한 일도 세심하게 살피시는 지극히 아름다우신 성심은, 예수님을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한 처형자들의 지독한 잔인함과 포악함을 보면서 극도의 아픔을 겪으셨어야 했습니다. 성모님도 당신의 아드님처럼 사랑하시고 침묵하시며 용서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의 힘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