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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현명 → 현명과 충고 항이 있음.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지성의 선한 습관에 세 가지 양상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언을 구하는 것, 바르게 판단하는 것, 그리고 결정하는 것이 그 세 가지입니다. 슬기로워지는 첫 단계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의 덕입니다. 이 겸덕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이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다는 점과, 공정한 판단을 위하여 유념해야 하는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서나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품성을 지닌 사람, 우리처럼 하느님을 충실히 사랑하기를 바라고 그분을 따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단순히 그의 의견을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에게 건전하고 사심 없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다음 단계는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보통 슬기는 신속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합니다. 때로는 우리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인이 밝혀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것도 현명하겠지만, 지금 곧바로 해야 하는 일을 연기하는 것도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선익이 위협을 받고 있을 때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슬기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 때문에 슬기로운 것입니다. 편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기보다 비록 스무 번 실패하더라도 거듭 도전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것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어리석게 돌진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터무니없이 무모하게 행동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것입니다.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좋은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사람, 흥분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하고 조용하게 올바른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음을 여는 덕목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움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는 사회적 조화도 아니고 아무런 마찰 없는 평화도 아닙니다. 슬기로움의 바탕에는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유치하지 않고, 진리의 친구답게 똑바로 나아가며, 결코 방황하거나 천박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슬기로운 마음은 지식을 구합니다”(잠언 18,15). 하느님에게서 오는 그 지식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궁극적 지식이며, 모든 피조물에게 평화와 공감을, 그리고 각각의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지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