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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정결 → 마음 내어줌 항이 있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행복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제쳐둔다면, 끔찍한 후회와 극한의 비참함을 경험할 것입니다. 의무를 등한시하고 하는 일들은 아무리 일상적인 일이더라도, 비록 합법적이고 조그만 행복을 주기는 하겠지만, 나중에는 쓸개처럼 쓰고, 식초처럼 시며, 악취가 심한 꽃인 아룸처럼 불쾌한 냄새가 날 것입니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각자는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시다. “주님, 저는 싸울 준비가 되었고, 주님은 언제나 승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가 패배하는 이유는 제가 주님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를 당신의 손으로 붙들어 주소서. 제가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저를 잡은 손을 놓지 마소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저는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비록 제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느님과 성모님의 도움으로 성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이러한 충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랑을 향하여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사랑을 향하여 갈 수 있도록 순수하고 깨끗하고 고상한 것들을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마음은 자신을 불결함으로 채워 복수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참 사랑과 생명의 순수함은 무감각이나 육체적 욕망과는 거리가 멀며, 또한 무정함이나 냉정함 그리고 감상에 빠져 있는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드러운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이신 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비활성 물질처럼 무미건조하고 완고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흠뻑 젖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인간적 사랑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고상한 사랑의 기회를 등한시하는 불행하고 슬픔과 실의에 빠진 독신 남녀와는 다릅니다.

여러분에게 자주 이야기하였듯이, 누가 그것을 알아도 개의치 않지만, 저는 우리 주님과 대화를 계속하기 위하여 사랑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 노랫말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온전히 당신께 속하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사랑 노래로 표현된 고귀한 사랑을 신적인 언어로 옮깁니다. 성령께서는 구약의 아가를 통해서 이 일을 하시며, 모든 시대의 위대한 신비가들도 이 같은 일을 하였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저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시면,

주님을 사랑하는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저에게 일을 하라고 하시면,

저의 유일한 바람은 죽기까지 일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언제, 어떻게, 어디서 일할지 말씀해 주소서.

오, 달콤한 사랑이시여, 당신께 간청하오니,

저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말씀해 주소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노래는 매혹적입니다.

한 작은 목동 소년은

홀로 외롭다네.

그에게 기쁨은 없고

슬픔과 고통만 가득하다네.

그의 마음에는 그저

짝사랑하는 목동 소녀 생각뿐이라네.

인간적 사랑이 순수할 때에는 무한한 존경과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의 부모님께 드려야 마땅한 거룩하고 고귀한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분들 덕분에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두 손을 들어 그 사랑에 축복합니다. 만일 누가 왜 두 손으로 축복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손이 네 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사랑에 복을 내리소서!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저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학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예수님께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내어놓는 것은, 비록 혼인이 참으로 “큰 신비”(에페 5,32)이기는 하지만 혼인의 사랑보다 더 숭고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어떠한 부르심을 받았든지 (독신이건 혼인이건, 사제직이건 관계없이) 각자는 자신의 처지에 따라 품위 있게 정결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정결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정결을 지키려면 누구나 섬세하고 예민하고 강력하게 싸워야 합니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그 사랑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때에만 온전히 얻을 수 있는 정결의 경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때때로 유혹이 느껴지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혹을 느끼는 것과 유혹에 동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유혹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쉽게 뿌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혹과 대화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