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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하느님의 친구들»에 구원 → 중재자이신 성모님 항이 있음.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그분이 받은 모든 특전과 성덕의 원천입니다. 그 신적 모성 때문에,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셨고 은총이 가득하시며, 평생 동정이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로 들어 올려지셨으며,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천사들과 성인들 위에 모후의 관을 받으셨습니다. 하느님 이외에 그분보다 위대한 존재는 없습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 때문에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무한한 품위를 지니십니다.”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형언할 수 없는 신비를 도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를 복되신 성삼위께로 이처럼 가깝게 인도하여 주신 성모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인이요 하느님의 원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주님과 화해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말씀께서 인간 본성을 취하실 때 어머니가 되어 주신 그분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하고 더 너그러우며, 아낌없이 퍼붓는 사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셨기에, 무한한 지혜로써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이룰 수많은 방법들을 선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첫 아담이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고 흙에서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첫 아담의 상처를 치유할 마지막 아담도 거룩한 동정녀의 모태에서 몸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범죄한 인간들의 살과 똑같은 살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을 봉헌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은 온 인류에 대한 참으로 위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강조하신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교황님들이 성모님을 공동 구속자로 부른 이유가 있습니다. “참으로 충만하게, 성모님은 고통받고 죽어 가는 당신의 아드님과 일치하여 고통받고 거의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충만하게, 인류 구원을 위하여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힘이 닿는 한, 하느님의 정의를 위하여 아드님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을 그리스도와 공동으로 인류를 구속하셨다고 올바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 수난의 순간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지치는 일 없이 이 순간을 거듭거듭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자녀들이 성공을 거두어 대중의 갈채를 받을 때에 마땅히 자부심을 느끼며 재빨리 그 곁에 나타나는 어머니들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뒤편에 머무르며 말없이 사랑을 보여 주는 다른 어머니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성모님의 방식이었고, 예수님도 그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때가 되었을 때, 성모님은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를 슬픔 속에서 들으셨습니다.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 27,39-40). 성모님은 고통받는 아드님과 하나 되어, 아드님이 부르짖으시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성모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분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구원하신 아드님의 사랑에 온전히 일치하여, 날카로운 칼에 심장이 꿰찔리는 무한한 슬픔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현존을 느끼며 새롭게 위안을 받으십니다. 성모님은 소리를 지르시지도 않고, 열광적으로 뛰어나가시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아드님 곁에 서 계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보시고, 그다음에 요한에게 고개를 돌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6-27).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대표하는 모든 인간, 특히 당신을 믿는 제자들을 어머니께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복된 탓’(부활찬송)을 노래합니다. 우리에게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해 주었기에 복된 탓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마리아를 어머니로 얻게 해 주었으니 복된 탓이라고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안전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간청하시어 온갖 은혜를 얻어 주시니,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그리고 당신 어머니의 자녀인 우리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