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밭고랑»에는 의지를 주제로 하는 12 항이 있음.

만약에 그대가 빈들거리고, 유혹에 직면하였을 때 내부로는 경박하고 외부로는 주저한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대가 내적인 생활을 진전시키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에게는 잘 맞물리지 않는 두 부분, 즉 이성과 감정이 있습니다.

신앙의 지성은 길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영웅적으로 걸어가거나 어리석은 행보를 하거나 둘 사이의 큰 차이도 가르쳐줍니다.

특히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우리 손에 맡기신 사업의 신적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것과는 달리, 감정은 당신이 경멸하는 모든 것, 지금 경멸하는 것에조차 집착합니다. 무수한 작은 일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몸이 피곤해서인지 초자연적인 시각을 잃어서인지 당신의 의지가 약해졌다고 보자마자 그 작은 일들이 몰려와 당신의 상상을 끄집어내고, 끝내는 산이 되어 당신을 괴롭히고, 낙담하게 합니다. 일의 괴로움, 불순종, 수단의 부족, 꿈에서 보는 편안한 생활, 크고 작은 여러가지 꺼려야 할 유혹, 훌쩍거리는 감정의 욱신거림, 피로, 영적인 미지근함이 가져오는 괴로움 등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두려움, 즉 성인(聖人)이 되라고 하느님이 원하시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데서 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엄한 말투지만 용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는 되돌아갈 ‘동기’가 털어 버릴 만큼 있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에 보답하는 대담함이 부족합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 ‘그리스도 자신’이 되도록 부르셨는데 말입니다. 당신은 사도 성 바오로에 대한 예수님의 훈계를 잊은듯 보입니다.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이것은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적 생활과 사도직으로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적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의지의 너그럽고 결연한 마음가짐입니다.

주님이 오지 않으면 확실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비록 험한 길, 가파른 언덕길일지라도 두터운 신뢰와 인내를 견디는 마음으로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 더욱 하느님과 일치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일하는 방법과 초자연적인 일하는 방법과의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일하는 방식을 보면 시작은 좋지만 나중에 저조해집니다. 초자연적인 일하는 방식은 마찬가지로 시작은 좋은…그리고 나중에는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고상한 이유로 행동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이유가 ‘지배’했을 때의 행동은 얼마나 훌륭한 것입니까.

고된 일을 앞에 두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여러분은 좋아서 열심히 일하시는 거냐고 했더니, 기쁨에 차서 침착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좋아해서 열심히 한다고요? 그런 동기로 일을 하다니, 너무 아깝습니다. 저희는 끊임없이 기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비몽사몽간에 깨어나 겁쟁이에게 힘을 주고 길을 잃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전열에 편입하게 하여 그토록 많은 힘이 낭비되는 것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여러가지 요구를 앞에 두고 반복하던 말, 그 초자연적인 궁리 -자발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세심함은- 네, 아마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겁니다. “이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진지한 결의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변덕,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도대체 어떠한 그리스도교적 완전성에 이른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대의 결점을 극복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나쁜 행동이라는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대의 의지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투쟁에서 단련되지 않았으니, 어려운 일이 닥쳤을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외모는 힘이 넘치고 씩씩합니다. 그러나 내부는 어떤 연약, 어떤 의지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당신의 도덕을 겉치레가 아니라 자신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습성으로 바꾸기로 결심하십시오.

“도움을 청할 힘조차 없는 일부 남녀를 저는 압니다”라고 그대는 저에게 슬픔과 실망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을 궁지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대가 당신 자신과 그들을 구하려는 소망은 그들의 회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또 만약에 그대가 그 일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누군가가 그대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