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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대담함 → 사도직에 대담함 항이 있음.

사도직이라고 하는 사업을 펼침에 있어서 맞닥뜨리는 ‘노(No)’는, 최종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노력’을 거듭하십시오.

그대는 너무 ‘조심스럽고’, 혹은 너무 ‘초자연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대는 유난히 똑똑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내거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마 그대만큼 ‘영리’ 하지않거나, 혹은 그대 이상으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렇지만’이라며 시끄럽게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매우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방법이 있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소심해지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십시오.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면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으며, 일을 그만둘 만큼 실망하는 일도 없습니다. 설령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패는 없습니다.

그대는 신앙을 가졌지만 충분히 활동하지 않습니다. 신앙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침착함. 담대함.

이런 미덕들로 겁쟁이들, 배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십시오.

쉬는 날 없이 싸우겠다고 그대는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대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봐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장애물도 없는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그대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야하기 때문입니다!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그 초자연적 사업에 뛰어들어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지 못하거나 일을 잘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에 관해서 더 생각한다면 그러한 핑계들은 없어질 텐데…

몇몇 선량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 하느님과 교회의 적이 그 두려움 의지해서 지내고 있다고 때때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면 저는 너무 부끄러워집니다.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저의’ 방 안의 대들보 세는 것이 하늘의 별을 세는 것보다 낫거든요.”

이런 사람은 많습니다. 자신의 작은 것을 버리고 하늘에 눈을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높이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질 때가 아닙니까?

거룩한 파종(씨뿌림)에 앞장서는 행운을 얻은 사람이, 초자연적, 인간적인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도시 전체와 그 주변을 감동케 하는 유일한 자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라고 크게 만족하고 자주 말하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수단을 손에 넣을 때까지, 더 많은 사람이 올 때까지,라고 생각하고 기다리지 맙시다. 사람들은 오늘, 지금 그대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그대가 나를 미소짓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대가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새 땅에 가서 갈라진 틈을 하나 열 가능성에 대해 저는 열광적입니다. 아마도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겠지요··· 저는 혹시 달에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찾아보고 싶습니다…

주님께 그대의 그 사도직의 열성을 더 키위 줍시사고 청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