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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밭고랑»에 수단 → 초자연적인 수단 항이 있음.

아까워하지 말고 전진해 스스로를 변화하고 언젠가 무언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그대는 부탁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결심이 실현되기 위해서 무슨 방법을 쓰고 있습니까?

아시겠습니까? 하느님과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왜 놀라워합니까.

납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일은 쉽게 진행됩니다. 오히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일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무슨 시간 낭비, 또 무슨 얄팍하고 인간적인 티가 나는 겁니까? 그게 효과를 내는 비결인 것처럼 모든 걸 전술로 돌려놓다니.

하느님의 ‘전술(戦術)’이란, 애덕(愛徳), 끝없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인 것을, 모두가 잊고 있습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 하늘과 땅 사이에 벌어진 메울 수 없는 거리를 하느님은 사랑으로 메꾸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직으로서의 소명은 하느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계속해서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즉, 기도, 희생, 공부 혹은 일, 우정, 초자연적인 시각… 내적 생활.

조직만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거룩한 정결은 육체의 겸손입니다. 그대는 주님께 그대의 마음에 일곱 개의 자물쇠를 주시라고 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대에게 충고하기를, 그대의 마음을 위해 일곱 개의 자물쇠를 그리고 동시에 그대의 젊음을 위해 팔십세의 근엄성을 주시라고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티 하나는 화재보다 훨씬 끄기 쉬우므로 주의깊게 지켜보십시오. 거기에서는 “‘용감해지는 것은 비열한 겁장이이므로, 도망치십시오.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는 눈은 살아있는 정신을 의미하지는 않고, 결국 사탄의 함정으로 판명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 더해 희생, 고행대, 채찍, 단식까지도 실행한다 해도 우리 하느님이시여, 당신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가지의 역설: 제가 “너의 걱정거리들을 주님께로 던져 버리면, 주님께서 너를 떠받쳐 주실 것이다.”라고 한 시편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날이 갈수록 머릿속의 걱정거리가 줄어들었습니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모든 것이 더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 특히 지식인(인텔리)의 세계에서 여러 당파 공통의 지령과 같은 것이 중시되고 있으며, 이것이 명백히 감지되어 가톨릭 신자까지 이에 따를 때가 있습니다. 뻔뻔스럽게도 참을성 있게 중상을 계속하고, 그것을 펼쳐나가고, 모든 진리와 모든 논리에 어긋나면서도 교회와 사람에게, 또 조직에 대해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입니다.

매일 믿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교회의 적을 표방하는 그들을 욕되게 하소서." 주여,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우리가 전파할 결심을 하고 있는 당신 빛의 밝기로 욕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즉 자기포기를 통해 승리를 얻습니다. 하느님의 전능하신 역할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