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maría Escrivá Ob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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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끝마치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적은 사람’ 쪽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잘 끝마친 일만이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일의 끝이 그 시작보다 낫다”(코헬 7,8).

여러분은 이미 다른 기회에 이러한 이야기를 저한테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그 주제를 다시 한 번 다루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매우 탁월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저는 로마 예식서에서 건물의 마지막 돌을 축복하는 기도문을 찾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인내롭게 건축을 한 사람들에게 그 돌은 열심히 일했다는 상징이므로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기도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만 모든 경우의 축복(benedictio ad omnia) 기도문이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기도문이 없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보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잊고 지내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충만한 삶을 이루려면 일상적인 일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주 사소한 일이더라도 우리는 그 일들을 성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약하고 한계가 있지만, 그러한 여건에서 최선의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하는 일은 흠이 없어야 하며,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도 극히 주의 깊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부실하고 성의 없는 예물은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어떤 것이든 흠이 있는 것을 바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레위 22,20).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각자가 시간과 힘을 들여서 하는 모든 활동은 창조주 하느님께 맞갖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위한 하느님의 일(operatio Dei)이어야 합니다. 요컨대, 완전하고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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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분께 올린 수많은 찬사들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들 모두를 한결같이 포옹하신 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놀라운 기적의 광경을 본 군중은 경탄하고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마르 7,37). 그분은 위대한 기적뿐 아니라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사까지도 “온전한 하느님이요 온전한 인간”(퀴쿰퀘 신경)으로서 훌륭하게 완수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온 생애를 생각하면 제 마음은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찹니다. 저는 그분께서 베들레헴, 이집트, 나자렛에서 보내신 30년의 숨겨진 기간에 대해서는 특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보다 훨씬 길지만 복음서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기간이 특별한 의미 없는 텅 빈 시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언제나 주장해 왔듯이, 우리 주님의 초기 생애의 침묵은 그 자체로 위대한 웅변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놀라운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 침묵의 시기에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동시에 인간으로서 우리와 똑같은 일상생활을 영위하시며,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였지만, 그분은 단순한 일들을 하시면서 모든 것을 성화하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공생활 기간에도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똑같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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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처음부터 인간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의 시작 부분을 살펴보면 누구든지 알 수 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그리고 죄를 통하여 죽음과 벌과 비참함이 들어오기 전에(로마 5,12 참조), 하느님께서는 흙의 먼지로 아담을 빚으시고 그와 그 후손을 위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습니다”(창세 2,15).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은 위대한 것이며, 이런저런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묶어 주는 불변의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물론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인간에게 노동의 의무는 원죄의 결과도 아니고, 현대에 들어와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지상 인간들에게 맡기신 필수불가결한 수단입니다. 하루하루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동참합니다.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고, 동시에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요한 4,36)을 거둡니다. 무릇 새들이 날기 위해 태어나듯, 사람은 노동을 하려고 태어납니다(욥 5,7 참조).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고 그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예컨대 돈을 벌려고, 또는 가족 부양을 위하여, 또는 출세를 위하여, 또는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거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려고, 또는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려고 노동을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을 피할 수 없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관점으로서, 여러분이나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복음서의 두 아들처럼 똑같은 초대를 받았음을 기억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마태 21,28). 제가 약속하건대, 만일 우리가 복음서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일을 거룩한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인간적 초자연적 완덕 안에서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맏아들처럼 아버지께 “싫습니다.”(마태 21,29) 하고 반항할 수도 있지만, 마음을 고쳐 회개하고 더욱더 열심히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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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존경받는 중요한 인물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행동이 개선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아니 계신 데 없이 늘 함께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랑을 드리는 사람의 말과 행동과 감정은 점점 더 성화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 양심이 생생히 깨닫고, 또 우리가 하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제외됨 없이 모두 그분의 눈앞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수행할까요! 이것이야말로 제가 지난 수 년 동안 선포해 왔던 거룩함의 비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본받으라고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세상 한가운데서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 그리스도를 모든 활동의 중심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자기 자신의 직업이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또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세상 안에서 고귀한 일에 성실하게 투신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의 초자연적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의 성화를 위한 하느님의 일꾼이 반드시 지녀야 할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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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건대,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에 그 사람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않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주제넘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1928년, 주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저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님 덕분에 힘든 일도 좋은 일도 많았던) 그때, 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오해하여 몽상가,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몽상가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과 저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였습니다. 그 일은 제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많은 사람이 저와 함께하고 있으며, 이제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과 단 몇 마디만 나누어 보면, 그 사람이 저의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모르는 손이 놓고 간 오리알을 품고 있는 암탉과는 다릅니다. 병아리들이 부화되는 데에는 많은 날들이 필요합니다. 암탉은 그 가운데 어떤 솜털 덮인 녀석이 뒤뚱거리며 걷는 것을 볼 때까지는 그 녀석이 자신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또 그 녀석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닭 울음소리를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는 저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이나, 저의 호의를 무시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좋게 대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던 어느 건물에 새겨진 문구가 제 주의를 끌었습니다. “각 여행자가 자기 자신의 길을 가게 하라.” 그것은 아주 유용한 충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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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가 잠시 본론에서 벗어났습니다만, 전혀 상관없는 말들은 아닙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확신하건대, 우리의 직업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 상황에서 분리할 수 없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떤 이유에서건 선택한 여러분의 직업에서, 여러분이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거룩해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모든 직업은 선하고 고귀합니다. 모두 초자연적으로 승화될 수 있어서, 끝없는 사랑의 물결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자녀의 삶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마치 희생을 하는 것처럼 말하면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그는 자신이 날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하는지에 관하여 말하지만, 실은 다른 동료들보다 절반밖에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이기적인 동기로, 기껏해야 인간적인 동기로 일할 뿐입니다. 지금 여기 예수님과 인격적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는 모두 아주 분명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경제인 등... 잠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동료 가운데 자신의 직업적 명성, 성실함, 또는 자기희생과 봉사 정신이 탁월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많은 시간을, 심지어 밤에도 일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만한 것이 없습니까?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자신도 그동안의 삶을 돌아볼 때 부끄러움을 느끼며,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저의 응답은 참으로 미흡했으며, 하느님께서 맡기신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도 참으로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교회의 교부 가운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등불 같은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스승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처럼 행동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천사들처럼, 어린이들 가운데서 어른처럼, 단지 이성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영적인 존재처럼 살며, 열매 맺는 씨앗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빛을 밝히며 산다면, 아무런 말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으로 보여 준다면, 말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이교인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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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도직을 단지 몇몇 신심 활동의 이행으로 축소시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분명한 의무를 지니고 있는 시민이요 근로자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성인이 되기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방식으로 그 의무를 완수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이렇게 촉구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직업 활동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여러분의 동료와 친구들을 비추는 등불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틈틈이 오푸스데이 회원들에게 묻습니다. 이는 저의 말을 경청하는 여러분 모두에게도 적용됩니다. “아무개가 좋은 그리스도인이면서 나쁜 기업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만일 그가 경영을 잘 배우지 않거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그는 직업 활동을 성화할 수도 그것을 주님께 봉헌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직업 활동의 성화는, 말하자면, 우리처럼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로 결심하고 동시에 세속 일에도 온전히 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참된 영성의 연결 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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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경향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쉽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또는 휴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 지나친 걱정을 합니다. 물론 휴식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활력으로 일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이야기했듯이, “휴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력이 덜 요구되는 다른 활동들에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우리 어깨 위에 놓인 놀라운 책임들에 대하여 너무 느긋하고 그것들을 망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또한 그릇된 합리화 속으로 숨으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반면에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결코 쉬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전에 노예였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이야기를 묵상해 봅시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에페 6,6-7).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주인에게 복종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마땅히 따라야 할 좋은 충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 빛을 주십사고 청합시다. 우리의 직업이 우리 자신의 성화 소명에 필요하고 또 유익한 것이 되도록 하는 그 신성한 의미를 매 순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고 간절히 청합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룩한 자부심을 지니고 참으로 일하는 사람임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특사로 행동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일을 마치지 못한다면, 만일 다른 사람들보다 직업적으로 덜 노력하고 덜 희생한다면, 만일 부주의하고 믿음직하지 않으며 경박하고 무계획적인 사람으로 불린다면, 우리는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영성 생활과 관련된 다른 의무들도 성공적으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며, 아마도 더 어려워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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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허황된 공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하고 아주 명확한 현실입니다. 우리 구원의 첫 시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하느님의 계획에 적대적이고 극히 이교도적인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매우 분명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받은 소명의 위대함을 잘 요약한, 어느 익명의 저자가 쓴 글을 음미해 봅시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맺는 관계는 영혼이 몸과 맺는 관계와 같습니다. 영혼이 몸 안에 있지만 육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속적이지 않습니다. 영혼이 몸의 모든 부분에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모든 도시와 고을에 삽니다. 영혼이 본질적으로 그러하듯이, 그리스도인은 내적으로 일하고 눈치채지 못하게 지나갑니다. ... 불멸의 영혼이 지금은 멸망해 가는 집에 머물고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멸망해 가는 것들 가운데 순례자로 살고 있지만 그 눈은 불멸의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혼이 고난을 겪음으로써 아름다워지듯이, 그리스도인은 박해 속에서도 그 수가 나날이 늘어납니다. ... 그리고 영혼이 몸을 스스로 떠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자신의 임무를 포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세속 일을 등한시한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도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확신하건대,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은 거룩한 섭리와 지혜에 따라 질서 지어지고 허락된 일상생활 속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일을 훌륭하게 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인간적 초자연적 열정으로 일을 시작할 때 기울인 노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면, 만일 우리가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일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내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가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참으로 원한다면, 가장 잘하는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우 성실하게 인간적 수단들을 사용할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주님 마음에 들고 금줄 세공처럼 훌륭하게 마무리된 완벽한 성과를 주님께 봉헌하는 데 필요한 초자연적 수단까지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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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주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는 감실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를 비인격적 기도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의 명상을 바로 지금 우리 주님과의 인격적 대화로 승화시키고 싶다면(이를 위해 소리 내어 하는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익명의 망토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내맡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교회에 가득한 군중 속에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를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무의미한 중얼거림, 진실한 내용이라고는 없는 반사적 습관에 지나지 않은 공허한 말소리로 추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일 또한 인격적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나누는 참된 대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일을 통해서, 일 안에서 거룩해지고자 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일이 인격적 기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울이는 주의와 관심은 비인격적이거나 판에 박힌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날마다 여러분의 일에 영감을 주는 거룩한 자극이 곧바로 시들고 소멸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의 기억은 스페인 내전 당시 전선으로 향하던 여정을 떠올립니다. 저는 아무런 지원 물자도 없었지만, 사제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면 어디든지 갔습니다. 그때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도덕적 해이와 게으름을 정당화할 구실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제 역할은 단순히 금욕에 관한 충고를 주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하나입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일깨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들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여기 지상에서의 행복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활용하여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입니다. 또한 전쟁을 자신의 삶에서 닫힌 괄호로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게을러지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마치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서처럼 참호와 초소에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군 임무와 양립할 수 있는 일, 예컨대 외국어 공부를 하도록 제안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를 그치지 말도록, 자신들이 행한 모든 일이 하느님의 일이 되도록 힘쓸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제가 큰 감동을 받은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저의 제안에 훌륭하게 응답한 군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굳건한 정신은 참으로 칭찬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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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또한 그즈음에 부르고스에 머물렀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도시에 주둔했던 많은 군인들 말고도 휴가 온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와 함께 며칠 시간을 보내려고 찾아왔습니다. 저도 무너진 호텔의 단칸방에서 몇몇 자녀들과 함께 지냈고, 비록 생활 편의 시설은 대부분 부족했지만 모여든 수백 명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공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를란손 강둑을 따라서 걷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저는 그들이 내면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결심을 굳건히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언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활로 들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열망을 불러일으키고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라스우엘가스 수도원까지 걷곤 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주교좌성당까지 가곤 했습니다.

저는 주교좌성당의 종탑에 올라가 꼭대기의 장식을 가까이 살펴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 장식은 참으로 인내롭고 힘겨운 세공 작업의 걸작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동행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이 아름다운 작품이 저 아래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곤 했습니다. 예전에 그들에게 설명했던 것과 연관 지어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고자,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참으로 아름답고 정교한 이 돌 장식처럼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마치도록 하십시오.” 우리 일행은 우리가 본 모든 것이 하나의 기도이며 하느님과 나누는 다정한 대화임을 이해하였습니다. 그 높은 종탑에서 일한 사람들은 저 아래 길거리에서는 자신들의 노고의 결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일이 우리를 주님께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까? 여러분도 중세의 석공이 했던 것처럼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일은 하느님의 일이 될 것이며, 인간의 일이면서도 거룩함을 간직한 결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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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찬미하면서 밭을 갈고, 주님의 자비를 노래하면서 항해도 하고 장사도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과 결합됩니다. 전장의 참호에 웅크리고 있는 병사처럼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을 때에도, 열성을 다한다면 주님 안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현존 안에 머물며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을 것이므로, 여러분의 노력은 기도가 된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직업의 인간적인 면과 관련해서는, 우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일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당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 말대로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믿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탑을 세우려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되지 않아야 합니다.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9-30).

저를 믿으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초자연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일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전에 마지막 돌을 얹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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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습니다!”(마태 20,22)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도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일을 기도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하느님께서 벌써 들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 영혼은 일상생활의 한가운데서 침묵 중에 기도를 올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극기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희생을 봉헌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라고 요구하십니다. 재미는 없더라도 중요한 일을 먼저 하고, 세세한 일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포기하고 싶더라도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자신의 임무를 끈기 있게 완수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이 모든 일로써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상이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장소에 십자가를 두어 여러분이 내적 기도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정신을 일깨우고,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이 섬기는 삶에 관하여 배울 수 있는 교과서로 삼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관상기도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면, 여러분은 곧바로 주님의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니게 될 것이며,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 거룩한 길들을 온 인류에게 활짝 열어 보이는 임무를 맡기셨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일로써 모든 대륙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일하는 시간 시간을 봉헌함으로써 먼 지역에서 신앙의 싹이 트도록 도울 수 있으며, 신앙 고백을 잔인하게 금지하는 나라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빛이 희미해져가고 영혼들이 무지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전통적 그리스도교 국가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의 일하는 시간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끈기 있게 몇 분이라도 더 오래 주님께 시간을 봉헌하십시오. 간단하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여러분은 침묵 속의 기도를 사도직으로 바꾸는 것이며, 이제 여러분에게 그러한 기도는 지극히 감미롭고 자비하신 주 예수님의 성심과 하나 되어 고동치는 심장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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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어떻게 언제나 나의 일을 완벽하게 이행하겠다는 정신으로 행동할 수 있지?’ 저 대신에 바오로 사도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1코린 16,13-14). 모든 일을 사랑을 위해서, 자유롭게 하십시오. 결코 두려워하지도 말고 타성에 젖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십시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매우 인상적이어서 자꾸자꾸 읊조리게 됩니다.

나의 삶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네.

내가 만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하다면,

그것은 내가 많이 슬퍼하였기 때문이라네.

커다란 고통을 겪는 사람보다 더 사랑스러운 이는 없기에.

직업상의 일을 할 때에도 오직 사랑을 위하여 하십시오! 모든 일이 사랑을 위하여 이루어지게 하고, (비록 오해와 불의와 배은망덕과 실패의 쓴맛을 볼지라도, 여러분은 참으로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이 빚어내는 기적의 결과, 넘치도록 풍요로운 결실, 영원의 약속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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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로는 어떤 사람들이(그들이 선한 사람들이건, 아니면 ‘꽤 괜찮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건) 말로만 그럴싸하게 신앙 선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들이 보여 주는 것은 피상적이고 부주의한 직업적 행동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된다면, 형제로서 바로잡아 주는 복음적 치료의 차원에서 애정을 간직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들을 돕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갈라 6,1-2). 그들이 가톨릭 신자일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연장자이거나 더 많은 경험과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그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돕고, 마치 좋은 부모나 선생님이 하는 것처럼 그들을 잘 인도해서 긍정적 반응과 행동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2테살 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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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영혼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소명대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좋은 표양을 보여야 합니다. 악표양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유부단하고 쓸모없다는 털끝만 한 의심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 여러분은 균형 잡힌 정의의 표양을 보이고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들어 올리면서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 농부를 비롯해서, 목수, 대장장이, 사무직 노동자, 학자 등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만심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승리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 혼자서는 땅에서 지푸라기조차 들어 올릴 수 없음을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요한 15,5 참조).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있건 간에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모든 곳에 뿌리면서 자신의 일을 하느님의 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평화와 기쁨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달은 사람의 몫이며, 기쁨은 자신이 하느님의 축복에 둘러싸여 있음을 아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인물이며, 하느님의 거룩한 사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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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표에 도달하려면 오직 사랑으로 재촉받는 영혼처럼 행동하여야 합니다. 결코 처벌받거나 저주받은 사람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7).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이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분의 도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지 아시지만 우리 어깨 위에 책임과 신뢰를 두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오직 사랑만이 모든 행동의 동기요 원천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눈을 감지도 말고, 어린애처럼 세상을 피상적이고 폭 좁게 바라보면서 만족해하지도 맙시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편안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어느 정도의 결심과 하느님을 향한 열망만으로 그 길을 가기에 충분하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여러분은 (아마도 생각보다 빠르게) 특별히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때에 여러분은 훨씬 더 큰 자기희생과 포기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희망의 덕을 기르고, 바오로 사도처럼 담대하게 외치십시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우리 가엾은 피조물에게 퍼부어 주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어떠할지 편안한 마음으로 성찰해 봅시다. 여러분이 평상시에 종사하는 일에서, 믿음을 실천하고 희망을 일깨우며 사랑을 되살릴 때가 왔습니다. 요컨대, 우리의 직업 활동이나 내적 생활에서 (위장, 기만 또는 회피 없이) 어떠한 모호함도 곧바로 몰아내 주는 향주삼덕을 기르는 일에 매진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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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바오로 사도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 15,58). 여러분은 보이지 않습니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언제나 일의 성화를 목표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온갖 덕을 동원해야 합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여러 어려움에 굴복함 없이 꾸준히 일하고 불안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과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극복하고 아낌없이 자신을 투신하려면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사회와 우리 가족과 동료 일꾼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려면 ‘정의’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경우에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서 주저 없이 일에 착수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강조하건대, 이 모든 일은 사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주님의 사도로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인지 예민하게 바로바로 살피고 책임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나자렛 작업장의 문을 열어 주시어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와 성 요셉과 더불어 주님을 보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거룩하신 세 분께서는 노동을 거룩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가엾은 저희 마음에 빛을 비추시어, 매일매일의 일을 통하여 주님을 찾게 하시며, 그 일이 하느님의 일, 사랑의 노동이 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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