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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탈렌트를 빚진” 종의 상황(마태 18,24 참조)이 하느님 앞의 우리 입장을 잘 요약해 줍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베푸신 그 많은 좋은 것들을 갚을 수 없으며, 오히려 죄를 범하여 그 빚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하느님께서 탕감해 주신 엄청난 빚을 제대로 되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부족함을 충분히 채워 주십니다. ‘주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시편 106,1 참조).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것처럼, 비유는 첫 번째 종의 대조적 행동을 보여 주는 두 번째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첫 번째 종은 단지 백 데나리온밖에 빚지지 않은 동료 종에게 무자비했습니다. 그의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가 자신의 것을 요구하는 권리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행동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고, 그의 편협한 태도가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깁니다. 어떤 사람이 예전에 단 한순간만 자비와 배려를 받았다고 해서 자기에게 빚진 사람한테 너그럽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정의는 권리와 의무의 양을 정확하게 맞추는 데 있지 않으며, 덧셈과 뺄셈으로 풀 수 있는 산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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