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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 온갖 모욕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골칫덩이로 여기고 마귀 들렸다고 이야기하기도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마태 11,18; 12,24 참조). 또 어떤 때에는 예수님께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신 것을 보고는 교묘하게 그릇된 해석을 하고,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하였습니다(마태 9,11 참조).

나중에는 속죄와 절제의 본보기이신 예수님을 두고 부자들의 식탁에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투덜거렸습니다(루카 19,7 참조). 그분은 경멸의 의미로 “목수의 아들”(마태 13,55)로 불렸습니다. 그분은 자신에 대하여 먹보요 술꾼이라고 험담하는 것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분의 적들이 하는 모든 비난을 내버려 두셨지만, 정결하지 않다는 것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때에는 적들의 말문을 닫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정화를 위하여 불을 놓을 수 있는 사랑과 빛, 순수함과 깨끗함의 놀라운 본보기, 흠 없는 본보기를 우리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겨 주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몸소 보여 주신 행동에 비추어 거룩한 정결을 묵상하는 것은 언제나 저에게 즐거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세련되게 이 덕목을 실천하시는가! 요한 성인이 예수님에 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요한 4,6).

차분한 마음으로 천천히 이 장면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온전한 하느님이요 온전한 인간”(퀴쿰퀘 신경)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교 여행 중에 지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똑같은 일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진하여 기진맥진했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승님께서 그렇게 지치신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분도 배고픔을 겪으십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이웃 고을에 갔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목마름도 느끼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몸이 피곤하실지라도, 영혼들을 위한 그분의 갈증은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죄인인 사마리아 여자가 왔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의 마음으로 그 길 잃은 양을 구원하시려고 진지하게 말을 건네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곤함도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으십니다.

제자들이 이웃 고을에서 돌아왔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시느라 바쁘십니다.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요한 4,27). 그분의 배려는 얼마나 세심하고, 그분의 사랑은 얼마나 크신지요! 주님께서 보여 주신 아름다운 덕목, 곧 거룩한 정결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더욱 인간답게 해 주고,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도와주며, 하느님의 일을 더욱 잘하게 하고, 더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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