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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겸손은 여전히 자신만을 챙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줍니다. 여기 로마에서 제가 종종 강조하는 것입니다만, 지금은 폐허가 된 아치 아래로 개선 황제들과 장군들이 행진을 하였겠지만 모든 것이 헛되고 교만과 자만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이 기념물 아래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이마가 아치 구조물에 부딪히지 않도록 머리를 낮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겸손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은 절제와 겸손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이천 년이 흘렀지만 주님의 계명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계명은 인간이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가리킵니다. 제가 사제가 된 이래로, 자주 설교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참으로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계명은 여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계명을 실천하려고 전혀 또는 거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슬픈 일이지만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메시아의 말씀은 명약관화합니다. 주님은 늘 강조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이유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갈라 6,2). 우리가 낭비한 시간들을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 우리는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고는 헛되이 변명만 늘어놓은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 주변에는 과중한 일에 시달리는 형제와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도와주는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친절하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조심스럽고 세련되게 자선을 베풀면, 그들은 누구한테 고마워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가엾게도,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신들에게 자유 시간이 없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러 장터에 나온 일꾼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하는 일 없이 보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이른 아침 첫 시간부터 계속해서 긴급하게 일꾼들을 찾으셨지만, 그들은 어떤 유익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찾으실 때에, 우리는 ‘예’라고 응답합시다.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기꺼이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마태 20,12)합시다.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고생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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