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그대의 삶이 헛된 삶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유익한 자취를 남겨 놓으십시오. 그대의 믿음과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십시오. 증오의 씨를 뿌린 불순한 자들이 남긴 더럽고 비열한 흔적을 그대의 사도적 삶을 통해 지워버리십시오. 그리고 그대 가슴 속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불꽃으로 세상의 모든 길을 밝히십시오.

그대의 행동과 대화가 그대를 보는 사람이나 그대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읽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하십시오.

성숙. 어린애같은 유치한 행동과 천박한 여자처럼 겉치레 하는 것을 삼가십시오. 깊은 내적 평화와 단정한 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그게 내 방식이고, 내 성격이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대 성격의 결함입니다. 

“* 사내대장부가 되십시오! Esto vir!”

* '길'에 아오는 구절들은 오푸스 데이가 설립된 때로부터 책이 출판되어 나온 1938년까지 호세마리아 에스끄리바 성인께서 대학의 젊은남학생들을 상대로 사목하시며 정리한 내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안돼”라고 말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왜 생애를 복잡하게 하려는 거냐?” 하고 속삭이는 악마에게서 즉시 등을 돌리십시오.

‘우물 안 개구리’식의 안목을 버리십시오. 마음의 폭을 보편적인 ‘가톨릭’의 경지까지 넓히십시오.

독수리처럼 날 수 있는데 닭장의 암탉처럼 푸드덕거려선 안됩니다.

침착. 화를 냄으로써 하느님께 죄를 짓게 되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마음도 상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그 노여움을 가라앉혀야만 한다면 화는 왜 내는 겁니까?

그대가 방금 말한 것을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음성으로 말하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말은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른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훈계하지 마십시오. 다음날이나 혹 며칠을 더 기다리십시오. 그대가 침착해지고 의지가 정화된 후에 꼭 훈계하십시오. 세시간의 언쟁보다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성질을 잘 다루십시오.

의지·힘·모범. 해야할 일은 해야합니다. 주저없이… 걱정없이…. 

그렇지 않았다면, *시스네로스는 시스네로스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아우마다의 데레사는 성녀 데레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로욜라의 이냐시오도 성 이냐시오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담대함!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길! Regnare Christum volumus!”

* 시스네로스 (1436-1517): 스페인 추기경, 스페인 왕실 고문이자 이사벨라 여왕의 고백신부, 트리엔트 공의회가 교회개혁을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스페인 교회를 개혁함. 그의 용기와 강인한 성격은 널리 알려져 있음.

장애물을 통해서 성장하십시오. 주님의 은총이 그대에게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곡마다 샘물을 터트리시어 산과 산 사이로 흐르게 하시니 Inter medium montium pertransibunt aquae” 

그대는 산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압축된 용수철이 더 높이 튀어나가 듯, 그대가 지금까지 꿈꾸어 온 것보다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는데 잠시 활동을 멈추어야 한다고 해서 좌절하시겠습니까?

시간만 낭비하게 만드는 그런 쓸데 없는 생각들을 멀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정력과 시간을, 길에서 짖어대는 개들에게 돌을 던지느라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무시해버리십시오.

그대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속인俗人들 속에 묻혀버린다고요?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그대는 지도자가 되려고 태어났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미지근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겸손해지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그대 마음 속에 사랑의 불을 다시 붙여주실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증세를 보이는 성격적인 병에 걸려선 안됩니다. 산만함, 일과 말의 부주의함, 덜렁거림, 요컨대 경솔함. 

그대 나날의 계획들을 텅 비어있게 ‘아주 텅 비어있게’ 하는 그 경솔함이 그대의 생애를 죽어있고 쓸모없는 허수아비로 만들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가 제때,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반응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대가 여전히 세속적이고 경솔하고 분별없이 행동하는 이유는 그대가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대항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비겁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의지. 매우 중요한 자질입니다. 그대는 작은 일들을 무시해선 안됩니다. 그것들은 결코 하찮거나 시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작은 일에서 자신을 이겨내고 부단한 훈련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지가 강하고 굳세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대는 비로소 그대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모범적인 표양과 말과 지식과 탁월함을 통해 남들을 가르치고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안내자, 장상,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저런 사람들의 성격과 부딪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 교제할 때 그런 부딪힘이 없다면 날카롭고 모난 그대의 불완전함과 결점들이 어떻게 깎일 수 있겠으며, 또 질서있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랑과 완덕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대와 주변사람들의 성격이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하다면 그대는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핑계. 그대의 의무를 회피하는 데 핑계거리가 절대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얼토당토 않은 핑계가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을 생각해내느라 주춤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물리쳐 버리고 의무를 수행하십시오.

굳세어지십시오! 강해지십시오! 사내대장부가 되십시오! 그리고나서는… 천사가 되십시오!

뭐라고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요? 덜 할 수는 없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대는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지식도…, 리더십도…, 대담함도. 좋습니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거룩한 사랑을 위해.

다투지 마십시오. 언쟁으로부터는 보통 아무런 빛이 나오지 않습니다. 감정이 빛을 꺼버리기 때문입니다.

혼인은 거룩한 성사입니다. 그대가 그 성사를 받을 때가 오거든 영적 지도자나 고해신부에게 유익한 책을 한권 추천해 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가정이라는 짐을 훌륭하게 짊어질 준비를 더 잘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대더러 그대는 ‘결혼성소’를 받았다고 해서 웃는 것입니까? 저런! 그대는 바로 그 성소를 받았단 말입니다. 

라파엘 대천사께 의탁하십시오. 그분이 토비아에게 하셨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순결을 보호해주십사고 말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의 사병들을 위한 것이지 그분의 참모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음식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과는 달리, 자손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필요치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식을 갖고 싶은 갈망? 우리는 수많은 영적 자녀들과 꺼지지 않는 빛의 자취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만일 육신의 이기심을 희생한다면 말입니다.

자신의 껍데기, 자신의 상아탑… 속에 움츠러든 이기주의자들의 제한되고 애처로운 행복을 이 세상에서 얻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기주의자들의 그런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 만화같은 천국의 모습을 얻기 위해 그대는 끝없는 영광의 기쁨을 잃어버리겠단 말입니까?

그대는 계산적입니다. 그러니 젊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젊은이는 모든 것을 바칩니다. 따지지 않고 청춘 그 자체를 바칩니다.

이기주의자! 그대는 언제나 그대 자신만을 돌봅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못느끼는 것 같습니다. 주변사람을 형제가 아닌 딛고 올라설 디딤돌로 보고 있군요. 그대가 철저히 실패하리라는 것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몰락할 때 그대는 남들이 그대를 사랑으로 대하리라 기대할 것입니다. 그대가 그들에게 좀체로 보여주지 않았던 사랑으로.

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단지 디딤돌로만 여긴다면 그대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대가 모든 영혼의 구원을 열망해야만 비로소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채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대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간절히 원해야합니다.

그대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진상을 조사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어떤 때는 예의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엔 자신이 언짢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 어떤 때는 남들을 언짢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제나 두려움 때문에! 

그러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 그대는 결코 훌륭한 판단을 지닌 사람이 못 될 것입니다.

진리 때문에 죽을지언정 진리를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완곡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비겁함’을 ‘신중함’이라고 부릅니다. 그대들의 ‘신중함’은 하느님의 적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여 머리가 텅 빈 사람들이 학자인 양 행세하게 하고, 또 결코 차지해선 안될 그런 자리까지 올라가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악습은 근절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조처 없이, 가망없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성격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대의 의무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올바르게 수행하십시오. 남들이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대는, 시쳇말로 ‘말재주’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말’로도,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정당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요? 난 그걸 믿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인간이 아니라 욕망만이 존재한다는 거 말입니다.

“제가 쉬운 것만 찾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나는 벌써 기도했습니다. 이제 그 멋진 결심을 성취하는 일은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믿음, 기쁨, 낙천주의. 그러나 현실 앞에 눈을 감아버리는 바보짓은 안됩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어리석은 짓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또 그렇게도 머리와 마음이 텅 빈 채 무게없이 둥둥 떠올라 세상의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

왜 마음에 그런 동요들이 있는 것입니까? 언제쯤 한가지 일에 전념할 것입니까? 이제 그만 주춧돌 놓는 일을 중단하고 그대의 계획 가운데 단 하나만이라도 마지막 돌을 얹어 결말을 지으십시오.

너무 예민하지 마십시오. 아주 작은 일도 그대를 화나게 합니다. 사람들이 그대에게 말을 건넬 때는 극히 사소한 일에서조차 말조심을 해야합니다. 

“넌… 불쾌한 놈이야”라고 내가 말한다고 해도 언짢아 하진 마십시오. 그런 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코 쓸모있는 사람이 못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훌륭한 예절에 따라 먼저 정중히 사과하십시오. 그리고나서는… 거룩한 뻔뻔스러움으로 의연하게 의무수행의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 걸어 나가십시오.

사람들이 그대에 대해 부당한 험담을 해서 마음이 아픈 겁니까? 만일 하느님께서 그대를 떠나신다면 그대는 더욱 비참해질 것입니다. 덕행을 꾸준히 실천하고, 그 소문쯤은 무시해버리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평등’이라는 말이, ‘불공평’과 동의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허세와 그런 우쭐거림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가짜로 보입니다. 적어도 하느님 앞에서나, 그대의 지도자 또는 형제들 앞에서는 그런 행동을 취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들과 그대 사이에 놓여있는 장벽 하나가 제거될 것입니다.

그대의 성격은 강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참견하려는 그 조바심이란! 그대는 모든 음식에 소금이 되려고 기를 씁니다. 그런데 내가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고 불쾌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대는 소금이 될 자질이 부족합니다. 그대는 소금처럼 녹아서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질 줄 모릅니다. 그대는 희생정신이 모자란 반면 호기심과 과시의 기운은 그득합니다.

지껄여대지 마십시오. 다른 이의 비밀을 수군대거나, 이간질하거나, 고자질하는 것 같은 유치한 행동을 삼가하십시오. 그대는 한껏 달아오른 사랑을 이야기와 잡담으로 식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대는 제일 나쁜 일을 저질러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때 재잘재잘 지껄인 그대의 혀가 다른 사람이 지닌 인내심의 단단한 벽을 뒤흔들어 놓았다면, 그대의 성소를 지탱시키는 주님의 은총을 잃고 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혀는 이미 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호기심이 많고 캐묻기를 좋아해서 무엇이나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사내답지 못한 것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사내대장부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참견하는 대신 그대 자신이 정말 누군지를 알려고 애쓰십시오.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원치도 않았던 험담과 수치스러운 구설수에 휘말렸음을 알았을 때 단순하고 솔직한 그대의 남성다운 기개가 짓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구설수가 끼친 모욕을 참아내고 그 경험이 그대를 더 신중하게 만들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야 할 때 그대는 왜 자신이 겪은 쓰라린 실패를 들어서 비판하는 것입니까?

험담이 아님은 인정하지만 그런 비판적인 정신을 그대가 사도직에서나 그대 형제들에게 행사해선 안됩니다. 이 말을 하는 날 용서하십시오. 그대의 초자연적 임무에서는 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일을 판단해야 하는 의무도 없이 판단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 아니며, 설령 그대가 최상의 동기를 갖고 있다 해도(그 점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대는 그대의 부정적 태도로 모든 사람의 진보를 지연시킬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대는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비판 정신은 제 성격의 기본인 걸요…?” 

들어봐요.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죠. 펜과 종이를 가져와요.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짧게 쓰세요. 그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말입니다. 그 쪽지를 그대의 윗사람에게 드리세요. 그리고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그는 책임자이고 직책에 따르는 은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그 쪽지를 철해놓거나… 아니면 휴지통에 버릴 것입니다. 그대가 하는 비판은 단순한 험담이 아니고 최상의 동기에서 나온 거라니까, 윗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든 그대에게 상관없을 겁니다.

타협? 타협해야겠어! 이 말은 싸울 의지가 전혀 없는 게으른 자, 교활한 자, 비겁한 자들이 사용하는 어휘 속에서만 발견됩니다. 그들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패배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봐, 이 사람아! 그대가 설사 어린아이처럼 되고 싶어도, 사실 그대는 하느님 보시기엔 아주 어린아이지요, 낯선 사람들 앞에 그대의 형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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