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어린이

‘영적 어린이의 길’을 알려고 노력하되 억지로 그 길을 따르지 말고 성령께서 그대 안에서 일하시게 하십시오.

어린이의 길, 의탁, 영적 어린이. 이 모든 것은 결코 유치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단단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영적 어린이의 삶에서는 ‘어린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결코 유치하거나 어리석지 않습니다.

영적 어린이의 길이라는 것은 마음이 어리석거나 유약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분별력있고 굳건한 마음으로 걸어야하는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것이 ‘쉽고도 어렵기’ 때문에 영혼은 하느님의 손을 잡고 시작해야 하고, 또 하느님의 손에 이끌려 계속 걸어야 합니다.

영적 어린이가 되기 위해서는 이성을 굴복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의지를 꺾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이성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의지의 단련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욕구에 ‘아니다’라고 말하듯이, 그대의 이성에도 거듭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의지의 단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어린이의 ‘작은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어린이처럼 되고자 하는 강하고 성숙된 의지를 지녀야한다는 역설이 성립합니다.

작아지는 것. 큰 대담성은 언제나 어린이들 것입니다. 누가 달을 따 달라고 보채겠습니까? 과연 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겠습니까? 

그런 어린이에게 하느님의 풍부한 은총과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갈망과 예수께 대한 지대한 사랑과 획득 가능한 모든 인간적 지식을 넣어주면, 우리는 분명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현대 사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가 되십시오. 지금보다 더욱 더 어린이가 되십시오. 그러나 ‘철없는 나이’에 머무르지는 마십시오. 어린애가 ‘어른인 척’ 하는 것이나, ‘유치한 어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을 본적이 있습니까? 

하느님 앞의 어린이…. 그렇게 되기 위해선,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는 아주 성숙한 인간이 되십시오. 아! 그리고 애완견의 나쁜 습관 같은 것은 버리십시오.

우리는 가끔 어린이 같은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것은 소소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들인데, 우리가 기계적인 것이 되지 않게 조심하기만 하면,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것들도 틀림없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서 그대는, 걸음마를 갓 시작한 두살 배기 아이보다 더 어린아이입니다.

아이일 뿐만 아니라 그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자녀여, 그대 ‘어른생활’의 어마어마한 난행(亂行)들을 보속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그대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십시오.

어리석은 아이여, 그대가 지도자에게 그대 영혼의 어떤 것을 숨기는 날, 그대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닙니다. 단순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입니다.

아이여, 그대가 정말로 어린이가 된다면, 그대는 못해낼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인 그대에게는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불쾌한 일은 금세 잊어버리고 평상시의 놀이로 되돌아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탁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쉬게 될 터이기에.

아이여, 매일 그분께… 그대의 나약함까지 봉헌하십시오.

착한 아이여, 그분을 모르는 노동자들의 일을 주님께 봉헌하십시오. 또 주님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 다니는 불쌍한 아이들의 천진스러운 즐거움도 봉헌하십시오.

어린이들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전부 부모님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재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계십니다.

작아지십시오. 아주 작아지십시오. 두살, 많아야 세살… 그 나이보다 많은 아이들은 벌써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부모를 속이려는 못된 녀석들이니까요. 

그들은 악으로 기울어지는, 죄의 서곡인 어떤 ‘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합리화하는 방법과 허위에 찬 자신들의 거짓 속셈을 진실인 양 은폐하는 사악함은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함을 잃어버렸는데, 단순함은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여, 그대는 왜 한사코 죽마를 타려고 고집하는 것입니까?

어른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린아이, 항상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나이가 들어 죽는다 해도 말입니다. 아이가 어디 걸려 넘어지면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의 아버지는 재빨리 그를 일으켜줍니다. 

나이 든 사람이 넘어지면, 즉각적인 반응은 웃음입니다. 다음엔 이 첫 충동이 연민으로 변합니다. 게다가 나이든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대는 매일 초라하게 비틀거리고 쓰러집니다. 그때마다 더욱 더 어린이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이가 되어 비틀거릴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의 손이 그대를 일으키시게 하십시오.

아이여, 의탁은 유순함을 요구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이들과 어린이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작은 영혼의 역설들. 예수께서 세상사람들이 행운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대에게 보내실 때 그분의 선하심과 그대의 사악함을 생각하고 슬프게 우십시오. 

예수께서 세상사람들이 악운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대에게 보내실 때 기뻐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언제나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며 그때야말로 십자가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니까요.

대담한 아이여, 이렇게 외치십시오. 데레사의 사랑이여! 하비에르의 열의여! 성 바울로는 얼마나 비범한 사람이었는가! 오 예수님, 그렇다면 저는… 저는 바울로, 하비에르, 데레사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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