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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삶 

“내 생명의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네.”(시편 42,9) 만약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살아계시는 존재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도와 한데 엮여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기도란 한 번 드린 뒤에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이를 밤낮으로 되새기는” 의로운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밤새도록 당신을 묵상하며 제 기도가 저녁에 드리는 분향과 같기를 바랍니다.” 밤부터 아침까지, 또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의 하루 전체가 기도를 위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의 잠조차도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일깨워줍니다.

예수님에 관해 복음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때때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친밀한 대화를 하시면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사랑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스승님이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 그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바오로 성인은 “기도에 전념” (로마 12,12) 하라고 신자들에게 권고하면서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본보기를 널리 전파했습니다. 루카 성인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을 마치 예술가가 붓으로 그린 듯한 문구로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사도 1,14)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훈련장에서 은총의 도움으로 활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양식인 기도는 한 가지 형식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기도의 통상적인 표현을 말씀에서, 또는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셨거나 주님의 천사들과 성모님이 가르쳐주신 염경기도(念經祈禱)에서 찾아낼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 우리는 수많은 신앙의 형제들이 신심을 표현했던 유구한 언어들을 사용하기도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전례에 사용하는 기도문(lex orandi)이나, 또는 ‘천주의 성모여, 기억하소서’, ‘하례드리나이다, 여왕이시여’(Sub tuum praesidium, Memorare, Salve, Regina)’ 등 성모님께 드리는 교창(交唱)처럼 열절한 사랑을 표현한 기도들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두세 단어로 함축해 화살처럼 빨리 드리는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배우게 된 화살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2)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17)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마르 9,23) 이 기도는 제 신앙을 강하게 해줍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마태 8,8)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8)… 이 밖에도 사랑으로 가득한 짧은 문구들이 있습니다. 이 기도문들은 우리 영혼의 심오한 열정으로부터 솟아나 매일매일의 다른 여러 환경들에도 합치하는 것들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기도 생활은 오직 하느님과의 대화를 위해 바쳐진 순간들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2천 년 동안 우리를 기다려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가능하면 감실 앞에서 홀로 드리는 고요한 대화의 순간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를 ‘묵상기도(默想祈禱)’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 전체가 그 기도에 참여합니다. 우리의 지성과 상상력과, 기억과 의지가 모두 기도 안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매일 다반사로 반복되는 일상에도 불구하고 이 기도는 우리네 가난한 인간적 삶에 초자연적 가치를 부여하도록 돕는 묵상인 것입니다.

이런 묵상의 순간들과 소리 내어 올리는 우리의 염경기도(念經祈禱), 그리고 화살기도들 덕분에 우리는 하루 종일 하느님께 끝없는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치우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항상 서로를 생각하고 있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은 영적인 효과로 넘쳐날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방해받지 않고 주님과 친교를 맺기 시작할 때 그의 내적 삶이 성장해 굳세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수행하기 위해 고되지만 매력적인 분투를 하게 됩니다. 덧붙여 말씀드립니다만, 이것은 선택받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가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이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의 다른 측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도직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임무를 수행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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