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maría Escrivá Ob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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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질그릇 속의 은총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다닙니다. 인간의 자유는 나약하고 허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물을 맡기셨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이 우리를 항상 돕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과 안락함에 대한 편애 그리고 우리의 교만은 때로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거부하고 우리를 죄에 빠져들게 합니다. 저는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도신경을 낭독하며 교회의 거룩한 기원에 대한 제 믿음을 표현해왔습니다.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 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저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라는 한 마디를 그 말씀 앞에 덧붙입니다. 저의 이런 습관을 얘기하면 누군가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과 저의 죄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진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학적인 믿음 없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마음대로 판단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특정 성직자나 몇몇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누가 더 훌륭하다거나 또는 그렇지 못하다거나 하는 것만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을 피상적인 것들에 가두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시느냐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 가운데 엄존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으며, 당신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네 일상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끊임없이 도와줌으로써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불신할 수도 있고, 심오하고도 진실한 회개의 행동인 ‘내 탓이요’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의심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교회를 의심하는 것, 교회의 거룩한 기원에 대해 의혹을 품는 것, 가르침과 성사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교회의 효과적인 역할을 의심하는 것은 바로 그분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성령 강림의 실재를 온전히 믿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는 ‘화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화해가 없었을 때에는 성령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부재는 하느님께서 분노하셨다는 징표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충만하게 오신 것을 여러분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화해에 관해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만약 ‘지금 성령이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숱한 기적들이 일어났을 때, 죽은 이가 부활했을 때, 나병환자가 치유됐을 때 성령께서 함께 계셨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이 순간 진실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제가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만약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 6,9)라고 말하는데, 만약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사도들은 이렇게 우리를 가르칩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갈라 4,6)”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간청할 때에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성령이 움직여서 그런 기도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교회 안에 지혜나 지식의 말씀이 한 마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성령을 통해 지혜의 말씀이 주어진다’고 쓰여 있습니다. 만약 성령께서 안 계시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교회가 존재한다면, 성령의 현존하심에 대한 의심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인간의 온갖 부족함과 한계들을 넘어 교회는 하나의 징표이며, 보기에 따라서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보편적인 성사입니다. 비록 교회가 새로운 율법에 따라 칠성사의 기원을 규정한, 그 엄격한 의미에 입각한 정의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파견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가 강하고 굳세며 살아서 숨 쉬는 신앙을 가졌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을 만큼 용감하다면, 사도들의 시대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기적들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우러러볼 능력과 하느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묵상할 능력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에 사로잡혀 사랑을 잃어버렸던 영적인 불구자들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하느님을 알고자 하지 않았던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청력이 다시 주어졌습니다.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혀가 마비됐던 말 못 하는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죄 때문에 생명이 파괴됐던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히브 4,12) 라고 하신 진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우리도 성령의 권능을 묵상할 때 기쁨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창조물들의 마음과 의지 안에서 성령이 활동하시는 결과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기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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