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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스승 

그러나 우리들 자신만을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모든 인류를 끌어안을 때까지 넓혀 가십시오. 우선 여러분의 친척과 친구, 동료들처럼 여러분과 가까이 있는 분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주님과의 더욱 깊은 친교를 깨닫게 되는지를 보십시오. 그들이 바르고 귀하며 하느님께 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특별히 우리 성모님께 그들을 인도하십시오. 그리고 또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도 성모님께 간청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충실하고 관대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몸,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성교회(聖敎會)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온전한 진리를 찾는 이들은 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사랑의 본질과 깊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펼쳐보여야 할 막중한 의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일 수 없습니다. 만약 이기적이라면 자신이 받은 소명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선함을 무시하면서 자기 영혼만의 평화를 지키는 데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입니다. 물론 그러한 평화는 당연히 거짓 평화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난 인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가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결코 구경꾼으로 태평하게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실천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행동에 전혀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그 장애물은 ‘그릇된 존경의 형식’을 취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영성적인 주제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겁니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내켜 하지 않는 것이죠. 이러한 사고는 참으로 빈번하게 이기심의 가면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처의 문제가 아니라 도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비록 개인적으로 매우 부족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숱한 단점들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1티모, 2,4) 이것이 바로 그 기쁜 소식입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허락을 구하시지 않고 우리 삶에 들어오셨습니다. 당신의 첫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마르 1,16-17)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아니요”라고 말하는 그릇된 자유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루카 성인이 언급한 부자 젊은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가서 가르쳐라” 라고 하신 그리스도 말씀에 따라 우리는 하느님에 관해, 그리고 이 위대한 인간적 주제에 대해 얘기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향한 열망은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 아드님의 사랑을 만방에 알리려는 모든 이들의 여왕이시여, 당신은 우리의 고통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남루한 삶을 위해 예수님의 용서를 청해주소서. 불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재가 되어 버렸으며, 꺼져버린 등불이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된 우리의 초라한 삶을 위해 용서를 구해주십시오.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당신이 청해주시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 용서를 청해주심과 함께 신앙과 사랑의 삶을 진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주소서.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다른 이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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