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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함께 얘기해온 것들에 관해 기록한 선례들을 생각할 때마다 크게 고무됩니다. 첫 열두 제자를 부르신 복음서의 기록에서 차근차근 그 내용을 짚어봅시다. 그리고 천천히 묵상합시다. 우리 주님의 거룩한 증인들에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합시다.

제가 매우 좋아하고 공경하는 첫 사도들은 인간적으로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오를 제외하면 사도들은 그저 그런 어부들에 불과했습니다. 세리였던 마태오만은 아마도 어렵지 않은 생활을 했겠지만, 그마저도 예수님 말씀을 듣고는 모두 버렸습니다. 나머지 사도들은 밤을 새워 고기를 잡아야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곤궁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한 그들의 반응으로 미루어봤을 때, 그다지 영민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예시와 비유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스승이신 예수님께 다가가 ‘그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주십시오.’(마태 15,15) 하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 관해 얘기하며 ‘누룩’의 비유를 사용하셨을 때 사도들은 자기들이 빵을 사오지 않은 것에 대해 나무라시는 걸로 잘못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사도들은 가난하고 무지했습니다. 그들은 그리 단순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야심까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그들 생각에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우실 것이며, 그때 자신들 가운데 누가 가장 높은 자가 될지 논쟁했습니다. 심지어 최후의 만찬의 그 친밀한 분위기에서도,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스스로 죽으시려는 그 숭고한 순간에서 조차도 그들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신앙이요? 그들은 거의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점을 지적하셨지요. 그들은 죽은 자가 일어나고, 온갖 질병이 치유되고, 빵과 물고기가 불어나고, 폭풍우가 잠잠해지고, 마귀가 내쫓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즉시 반응한 사람은 사도들의 지도자 역할로 선택된 베드로 성인뿐이었습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 15) 하지만 베드로의 신앙은 자신의 한계에 매몰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받고 죽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반박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나무라셔야만 했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 16,23) 이와 관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존엄하신 주님께 맞지 않으며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베드로를 나무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고통은 나의 존엄에 걸맞는 일이며 내가 당해야 할 일이다. 나의 존엄과 나의 위신(威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네 마음이 인간의 사고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앙심 얕은 사람들이 적어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만은 남달랐을까요? 그들은 말로는 분명히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열정에 휩싸여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요한 11,16)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그 진실의 순간에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도망쳤습니다. 사도들 중 막내였던 소년 요한만이 진정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주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 곁에는 오직 요한만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죽음만큼 강한 사랑을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우리 주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 “교회의 기둥”이 되기 전까지 (갈라 2,9) 제자들은 여전히 그러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점과 단점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마태 4,19), 구원사업의 협조자이자 하느님의 은총을 나눠주는 이들이 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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