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maría Escrivá Ob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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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저는 어느 대리석 부조(浮彫)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모습이었지요. 작품의 중심인물들이 네 명의 천사들에게 둘러싸였는데, 천사들은 저마다 상징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왕관, 지구본(地球本) 위에 떠오른 십자가, 그리고 검(劍)과 지휘봉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공현’이라는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상징들을 선택했습니다. 몇 명의 현자(賢者)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전승(傳承)은 이들을 왕(王)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마태 2,2) 하고요.

이 질문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구유에 누워 있는” (루카 2,12) 예수님을 묵상해봅니다. 그분은 동물한테나 어울리는 곳에 누워계십니다. 주님, 왕으로 오신 당신의 위엄은 대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의 왕관과 왕검, 그리고 지휘봉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당연히 당신의 것인데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포대기에 싸여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왕께서는 이토록 아무런 꾸밈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무방비 상태의 어린 아기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필리 2,7).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구유에 누우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이미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거룩하게 되라는 성소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구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첫 번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이기려고 아등바등하는 대신에 우리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 분투함으로써 모두가 구원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비워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종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하느님께 데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왕은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군림하길 원하셨을까요? 그래서 아기로 오셨을까요? 누구나 어린 아기를 좋아하니까요. 그렇다면 왕은 어디에 계신 걸까요? 성령께서 우리 영혼 안에 머무르기를 바라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어디 계시나요? 그분은 교만이 있는 곳에는 계실 수 없습니다. 교만은 우리와 하느님을 갈라놓으니까요. 그분은 사랑이 결핍된 곳에도 계실 수 없습니다. 사랑의 결핍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차단시키니까요.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곳에 계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 없는 상태에서는 인간은 홀로 남겨지게 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아기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 꿇고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임금이라는 표시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왕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분께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교만함을 없애주십시오. 제 자신만을 사랑하는 마음을 없애주십시오. 제 자신만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을 앗아가 주십시오. 제 심성의 근본이 당신과 일치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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