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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성인이 예수님으로부터 거룩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면, 인간적으로는 요셉 성인이 하느님의 아들을 가르친 것도 많았을 거라고 저는 감히 얘기하겠습니다. 요셉 성인에게 이따금씩 주어지는 ‘양아버지’라는 호칭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호칭이 요셉 성인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어쩐지 차갑고 형식적인 것처럼 여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육신적으로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육신의 부자 관계가 부성(父性)의 유일한 특성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한 강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란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넘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성인은 어땠을까요? 그의 부성(父性)이 정결하였던 것만큼이나 성인은 아버지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다른 아버지들과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사랑의 결실이 아닌, 육신으로 아들을 가진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요. 그랬기 때문에 루카 성인은 “사람들이 그를 예수님의 아버지로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왜 루카 성인은 ‘사람들이 생각했다’고만 얘기할까요?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라는 생각과 그러한 인간적 판단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요셉이 낳은 자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셉의 깊은 신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그에게 아들이 생긴 것입니다. 태어나신 그 아기는 동정 마리아의 아드님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친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사랑했고,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들을 아들에게 줌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서 명하신 대로 아이를 돌봤으며, 자기의 전문 기술을 전수해 예수님을 장인(匠人)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자렛의 이웃사람들이 예수님을 ‘장인(匠人-목수)이자, 장인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 성인의 작업장에서, 요셉 성인의 곁에서 일했습니다. 요셉 성인은 어떤 분이어야 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왜 요셉 성인을 통해서 이 세상에 그토록 큰 은총을 주셨을까요?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아들을 인간적으로 양육하는 사명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요셉 성인을 닮으셨을 것입니다. 일하는 방식, 성품과 말투를 닮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특유의 현실주의와 세세한 것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나누는 방법, 그리고 가르침을 주실 때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상황을 주로 활용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요셉 성인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이스라엘 어느 특정 지역의 말투를 쓰고, 요셉이라 불리는 목수와 닮은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장엄한 신비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누가 하느님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참으로 인간이셨고 평범한 삶을 사셨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로, 그런 다음에는 소년으로 요셉의 작업장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성인이 되어서 삶의 절정기를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루카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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