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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적은 ‘눈의 욕망’이라고 요한 성인은 이야기합니다. ‘눈의 욕망’은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게 만드는 뿌리 깊은 탐욕입니다. 욕망에 찬 눈은 세속의 것만을 바라보며, 결과적으로 초자연적인 실재(實在)는 전혀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물질적인 것에 대한 그릇된 욕망을 지적하는 요한 성인의 말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시대와 삶을 둘러싼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을 오직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기형적인 시선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눈의 욕망’ 때문에 우리 영혼의 눈은 무뎌집니다. 인간의 이성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지성에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신을 자유롭게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신 힘입니다. 하지만 미묘한 유혹이 있습니다. 그 유혹에 이끌려 인간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둡니다. “너희가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 (창세 3,5) 라는 생각에 우쭐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애(自己愛)에 가득 차서 하느님 사랑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존재는 ‘제3의 적’이 노리는 먹잇감으로 추락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활의 자만(自慢)’입니다. 이는 단순히 허영심이나 자기애에 빠져 그냥 지나쳐가는 일시적인 생각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만이 일반화된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화된 자만’은 가장 나쁜 악(惡)이며 모든 잘못된 행동의 뿌리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죽은 뒤 24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만심이 사라진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 자만(自慢)과의 싸움은 평생 계속돼야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리사이의 오만함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바리사이를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바리사이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자기만족’이라는 장애물을 당신께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자만은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업신여기며 학대하게 만드는 오만(傲慢)입니다. 그러기에 “오만이 오면 수치도 따라온다.” (잠언 11,2)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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