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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어둠의 왕자인 악마에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곧바로 밝아집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마태 4,11). 예수님께서는 시험에서 이기셨습니다. 그것은 진짜 시험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은 광야의 유혹이 진짜 시험이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은 하느님으로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권능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분이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힘을 쓰셨다면, 광야에서 유혹 받으신 사건이 무슨 본보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서로 나눌 수 있는 도움만을 쓰셨던 것입니다.”

악마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왜곡해 인용합니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시편 91,11)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를 시험하려는 유혹을 거부하십니다. 그리고 악마가 왜곡해 인용한 성경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러한 충실함의 보답으로 때가 되자 아버지 하느님의 사역자들(천사들)이 나타나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악마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사용한 유혹의 방법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악마는 성경 말씀의 의미를 불경하게 왜곡해서 그 문구들을 가지고 언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속지 않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록된 것이지 인간을 혼란에 빠뜨려 타락하게 하려고 쓰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으로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악마처럼 성경 말씀을 조작하는 그런 짓거리에 아무도 속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짓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악마가 저지르는 전형적인 수법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지혜의 말씀을 거짓으로 속이고 빛을 어둠으로 바꾸려는 수작인 것이죠.

예수님의 삶에서 이렇게 천사가 등장하는 순간을 한번 살펴봅시다. 그러면 모든 인간의 삶에 있어서 천사가 하는 역할, 즉 그들 천사의 사명에 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수호자인 천사들을 ‘강력한 친구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가는 데 동행해주라고 하느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배정해주신 존재들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들과 친구가 되라고 이끄시며,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도와주게 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삶의 행적들을 묵상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 그리고 정화의 절실함을 깨닫는 이 사순시기에도 기쁨의 여지가 존재함을 일깨워줍니다. 사순시기는 용기의 시간인 동시에 기쁨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기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당신의 천사를 우리에게 보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은 우리 인생 여정의 동반자가 되고, 길을 가는 내내 세심한 조언자가 되며, 우리가 맡은 모든 일의 협력자가 될 것입니다. 시편은 이렇게 천사들에 관해 노래합니다.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시편 91,12)

우리는 천사들에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천사들에게 의지하십시오. 당신의 수호천사들에게 얘기하십시오. 사순시기에 주시는 이 영성의 물결이 여러분의 영혼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영혼 깊이 깃들게 해달라고 간청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가엾은 존재들이니까요. 또한 여러분의 선한 의지를 주님께 가져가 보여드리라고 천사들에게 부탁합시다. 마치 퇴비 더비에서 자라난 한 떨기 백합처럼 우리의 비천함을 뚫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라난 선한 의지를 주님께 가져다드리라고 말입니다. 거룩한 천사시여, 우리의 수호자시여,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그래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저희가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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