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maría Escrivá Ob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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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던 그 남자의 대답이 제 마음속에 자주 떠오릅니다. 바리사이들이 그에게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여러 차례 물었지요.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요한 9,27)

바리사이들의 죄는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는 스스로를 자기 자신들 안에 가둬버린 데 있습니다. 자신을 걸어 잠금으로써 빛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바로 바리사이들의 죄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빛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하느님께서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부당하고 오만한 태도로 자기 이웃을 대할 것입니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둑질하고 속이고 간음이나 하는 그들과 같지 않게 해주시고, 여기 있는 세리와도 같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요한 9,39-41) 바리사이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한때 눈이 멀었던 그 남자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치유됐다고 진심으로 설명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를 모욕합니다.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요한 9, 34)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 중에도 정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스스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며, 진실하고 친절하며 고상합니다. 만약 그들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닫힌 눈을 치료해주시는 것을 막지 않는다면, 그분의 손에서 치료약으로 변한 진흙을 우리에게 발라주시도록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참된 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믿음의 빛으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현실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향점이 곧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소입니다. 우리는 사랑(愛德)으로 충만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1코린 13,4-7)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우리 이웃에 대한 친절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자선(慈善)을 선호하는 경향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에 부어주신 것이고, 우리의 마음과 의지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사랑은, 우정을 나누고 옳은 일을 한 기쁨을 누리는 초자연적인 기반을 제공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불구자의 치료 장면을 묵상해봅시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데 문 옆에 앉아 있는 불구자와 마주칩니다. 그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눈먼 남자의 치유와 흡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제자들은 더 이상 불구자의 불행이 그의 죄 때문이거나 그 부모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그에게 말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사도 3,6) 이전에 제자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모욕했지만, 지금은 자비로 그를 대합니다. 이전에는 사람을 경멸하며 판단했지만, 지금은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의 기적을 그에게 선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우리 곁을 지나가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도와 제자들의 모습으로 이 세상의 거리와 광장들을 계속 지나가십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 말씀을 듣고 계신 여러분의 영혼으로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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