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사제의 책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목자들 스스로가 민감한 양심을 가지기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앙의 유산을 채워주고 교회의 모든 유산을 만들어 주는 교의(敎義)와 윤리적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 그들이 분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에 대한 설명이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에제 34,2-4)

이 말씀은 매우 신랄한 질책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은 훨씬 더 나쁩니다. 하느님을 거스른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영적 안녕을 촉진해야 할 임무를 맡은 사람이 오히려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사람들에게서 영혼을 정화하는 세례수(洗禮水)를 빼앗게 되고, 영혼을 굳세게 하는 견진성사의 성유를 잃게 만듭니다. 또한 고해성사라고 하는 용서의 법원을 빼앗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평화를 위한 싸움(내적 투쟁)을 포기할 때 생겨나는 결과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지 않는 사람은 육신에 얽매인 노예 상태에 스스로를 맡겨버리게 됩니다. 육신에 얽매인 노예 상태란 순전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일순간에 불과한 영향력과 명성에 집착하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허영심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육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이런 시험을 겪게 그냥 놔두시고, 이름값 못하는 목자를 만나게 된다 해도 충격받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게 무류성(無謬性)과 확고함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충직함을 보장해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느님께서 요구하신 작은 일을 한다면, 그들에게 주시는 은총이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거룩함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제거하고자 분투한다면, 풍부하고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설사 매우 높은 지위에 있는 듯이 보이는 자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눈에는 매우 낮은 자가 될 것입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묵시 3,1-3)

1세기에 요한 성인이 쓴 이 권고는 사르디스 교회의 책임자에게 전달됐습니다. 일부 목자들의 책임의식이 약해지는 것은 비단 오늘만의 현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셨던 바로 그 시기, 사도들의 시대에도 그런 상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분투를 그만둔다면 어느 누구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굳세게 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도움과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겸손,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게 하는 고행,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보전하고 전파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견고하고 변치 않는 가르침에 대한 공부…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들 스스로를 굳세게 해주는 방법들인 것입니다.

다른 언어로 된 이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