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눈부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다른 영혼들을 위해 이 지상의 순례길을 밝힐 수 있는 불을 지닌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그 불빛은 결코 어두워지거나 흐려지지 않을 것이며 그림자를 드리우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밝게 비추도록 우리를 횃불로 쓰십니다.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응답한다면, 많은 사람이 이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걸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를 묵상한다면 그대는 결코 위로의 방주를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친밀한 벗, 주님의 거룩하신 마음(聖心)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과 같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성령은 나의 위로자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걸음걸음을 다 인도하십니다.

자주 생각하십시오. 그대는 하느님의 것이며, 하느님은 그대의 것임을 자주 생각하십시오.

그대는 믿음을 갖고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자비로우신 사랑으로 돌보아 주소서!”

청동같이 완고한 저의 심장을 녹여 주시고 변덕스러운 제 마음도 태워 정화해 주소서. 초자연적 빛으로 지혜를 가득 채워주시어 제 입술이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만을 선포하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영원한 사제의 몸짓으로 당신의 두 팔을 펼치시며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당신 구원의 열매를 “모든” 사람에게 주시고자 우리를 도구로 쓰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주님! 당신의 못 박힌 손안에 저희가 기꺼이 머물길 원합니다. 더 세게 붙잡아 주십시오! 주님, 이 지상의 모든 허물을 없애 주십시오! 저희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저희에게 불을 놓으소서! 당신 성혈에 흠뻑 취하게 하소서!

주님! 그런 다음 추수할 것이 많은 저 드넓은 들녘으로 아주 멀리 던져주소서! 그리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씨앗을 날마다 뿌리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위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거나 경악하지 마십시오. 거짓 신중함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기 위한 부르심(성소)은 매우 갑작스럽습니다. 사도들에게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와 만나고 그분의 부르심을 따르는 일이.

사도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따르는 일이 전부 하나였습니다.

우리를 위한 구원의 날, 영원(永遠)의 날이 도래했으니! 거룩하신 목자의 부드러운 속삭임! 귓가에 울리는 다정한 말씀,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렀노라!”

어머니가 우리를 부르듯이,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집안에서 즐겨 부르는 애칭으로 부르시며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는 “부르셨으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강바닥의 조약돌 위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심히 흘러가버리는 강물처럼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서에 나오는 또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요한, 안드레아…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세세에 영원히 변함없으십니다.

주님! 당신 자녀들이 멀리서는 불꽃이 보이지 않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숯이 되게 하소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불을 놓는 불씨가 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지핀 첫 불꽃이 타오르는 불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천사들은 저희 마음속에 있는 불씨를 지피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보았습니다. 죽은 재가 말끔하게 청소된 마음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생각하며 그대의 마음을 경탄과 감사로 충만하게 하십시오. “당신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 대전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하셨나이다!”

거룩하게 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토록 어렵지도 않습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착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욱 가깝게 닮을수록 그 사람은 더욱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께 속할수록 그 사람은 더 거룩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기 신자들처럼 하면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뵈었을 때나, 또는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께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요! 그분은 우리에게 존재와 지성과 의지… 등등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거룩하신 성모님을, 거룩한 미사성제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심을, 죄를 용서해 주심을, 그토록 많이 용서해 주심을, 무수히 많은 은사를, 더러는 특별한 은사를 베풀어 주심을….

아들이여,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대는 이 너그러우심에 어떻게 응답해 드렸습니까? 지금 어떻게 응답해 드리고 있습니까?

그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감동하는지 그대에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를 불렀고 너를 나의 교회로 데려왔으니, 너는 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친히 내게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주위를 잘 살펴보십시오. 이 지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께서는 그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부르십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덕의 삶을, 선택된 삶을, 영원한 삶을 살도록 부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죄와 불완전함의 사슬에서 구해주시기 위해서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폭력과 난폭하고 야만적인 성(性)이 횡횡하는 이 시대에 맞서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짐승처럼 되기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처신하기를 원합니다.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 각 사람 안에 아주 가까이 계시고 싶어 하시는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답게 처신하기를 원합니다.

이 말을 자주 묵상하십시오. “나는 가톨릭 신자이며 그리스도의 교회의 자녀이다. 그분은 아무런 공로도 없는 나를 데려와 ‘당신’의 집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저의 하느님, 어떻게 갚사오리까!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가톨릭 신자임을 자처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상기시키십시오. ‘성소’ 곧 하느님의 부르심은 주님에게서 오는 은총이자 하느님의 선하심에 힘입은 선택이며 거룩한 긍지를 갖기 위한 동기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자 기쁘게 모든 사람을 섬기라는 부르심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모에게 그 자녀들을 요구하실 때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실 때 당신을 따르는 것이 희생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그것은 무한한 영예이며, 위대하고 거룩한 긍지를 불러일으키는 동기이며, 편애의 표시이고, 하느님께서 특정한 시기에 보여주신, 그러나 영원으로부터 당신 마음에 두고 계신 아주 특별한 애정입니다.

그대를 이 세상에 낳아 주셨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해주신 그대의 부모님에게 감사하십시오. 신앙과 신심의 첫 싹을, 그대의 신앙생활이나 성소의 첫 싹을 그대 영혼 안에 심어 주신 분이 부모님이라면 더욱더 감사하십시오.

그대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선에, 그들의 영원한 행복에 그대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그대를 선택하신 것을 두고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대의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아주 많이 기대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자연법이자 또한 실제적인 하느님의 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것을 “지극히 감미로운 계율”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날이 부모님을 더욱 공경하고 부모님을 위해 희생하고 기도하며 부모님에게서 받은 모든 좋은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할 그대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스승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르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온전히 몸담고 살아가면서도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또 모든 인간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어졌습니다. 빛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비춥니다. 소금은 맛을 내며 부패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렇기에 사도적 열정을 잃어버린다면, 그대는 맛이 없고 쓸모없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실망하게 할 것이고 그대의 삶은 우스꽝스럽게 될 것입니다.

검붉은 거대한 탁류가 썩어가는 악취를 풍기며 집요하게 대지에 침투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시도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십자가에 토사물을 쏟아내는 것과 같은 정황입니다.

구세주께서는 세상에 만연하는 물질만능주의, 부패 등 온갖 오류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자녀들이 영혼을 정결하게 보존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를 강하게 붙들고 계시는 그분의 오른손에 힘입어 그야말로 청정 지역이 될 것을 명하고 계신 것이지요.

많은 이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이런 말들을 되뇌곤 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남의 삶에 관여해야 하는가?’

다른 이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하셨습니다.

만일 그대가 또 한 사람의 그리스도가 된다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처신한다면, 그대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밝게 비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의 마음을 밝게 비추시며, 어느 한 사람도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통탄할 일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지 200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이 지구촌에는 그리스도 신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 신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하고 구원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일하며 고난을 겪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저는 당신 은총으로 기뻐 뛰놉니다. 당신은 골고타 희생으로 저희에게 성령을 상급으로 주셨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타는 듯한 사랑으로 날마다 당신 자신을 제게 주시나이다. 성체로! 당신은 저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당신의 어머니를 제 어머니로 주셨나이다!

단지 감사드리는 것만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주님,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생각이 제 뇌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대의 삶 속에 사도직에 대한 열망의 불을 지피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십시오.

그대는 사랑에 대해 이런 말이 있다는 내 얘기를 종종 들었을 것입니다. 사랑이란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몸짓 또는 이기적으로 자기 인격을 실현하기 위한 한낱 수단이라는 얘기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저는 늘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참다운 사랑은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요구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늘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 기쁨은 십자가 모습 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십자고상을 볼 때마다 제 어찌 슬픔과 사랑으로 외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경탄하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사람이 되시어 하잘것없는 우리, 정말로 보잘것없는 우리가 당신을 알고 신뢰하도록 하셨습니다.

오, 예수님, 우리 영혼을 굳세게 해주시며 우리를 위해 길을 닦아 주소서. 무엇보다도 당신 사랑에 흠뻑 취하게 하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천상의 불로 우리를 불타오르게 하시어 이 세상을 밝히게 하소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새롭게 회심하고 다시 방향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분의 영감들, 그분께서 우리 영혼 안에 불어넣으시는 거룩한 갈망을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합니까? 우리의 모든 활동은 그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에 합당하게 처신하십시오.

단 하나의 영혼일지라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사랑하시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영혼들을 어떤 존경과 애정으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간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날들을 오로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데만 사용하게 해주소서!

나는 그대가 베드로와 요한처럼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예수님께 우리의 벗들과 동료들의 어려움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는 그들에게 본을 보이면서 “나를 보십시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아주 좋아하면 그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대가 묵상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갈증을 느낍니까?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제들이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거나 아니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성직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을 항구한 동반자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분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사랑을 창조하신 분과 말입니다!

가련한 작은 새와 같은 저 자신을 봅니다. 가련한 작은 새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닙니다. 기껏해야 3층 발코니까지 날아오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천루라고 말하기에는 초라한 건물의 옥상으로 날아가는 데 성공합니다.

갑자기 독수리가 이 작은 새를 낚아챕니다. 독수리는 이 새를 자기 새끼로 착각한 것입니다. 독수리의 강한 발톱에 채인 새는 더 높이 솟아오릅니다. 산을 넘고 눈 덮인 봉우리를 넘고 오색 찬란한 구름 위로 높이 솟아올라 마침내 태양을 마주 보는 곳까지 오릅니다. 그제야 독수리는 그 작은 새를 놓아주며 말합니다. “가라, 날아라!”

“주님, 결코 다시는 땅 언저리에서 퍼덕거리지 않게 하소서!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광휘의 빛으로 언제나 저를 비춰 주소서! 당신 마음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이 친구는 이렇게 기도를 마칠 것입니다. “저는 제 하느님의 뜻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완전히 그분 손에 맡겨드립니다. 원하시는 어디에나 저를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 그리고 어머니께 그대가 지은 그 모든 잘못과 엄청난 허물을 깨닫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해달라고 청하십시오. 그것들을 절대로 잊지 않고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예수님, 정화의 불이 될 사랑을 주십시오. 그 불이 저의 가련한 육체, 가련한 마음, 가련한 영혼, 가련한 몸을 살라 지상의 모든 비참함에서 깨끗해지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비워낸 저를 당신으로 채워주십시오. 이 땅의 그 어떤 것에도 절대로 집착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랑이 언제나 저를 지탱하게 해주십시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마십시오. 그대 자신을 위해서는 오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만 바라십시오.

비록 인간의 눈에 나쁘게 비치더라도 그것이 그분의 손으로부터,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대에게 좋게, 그렇습니다, 아주 좋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날로 더욱 확신하며 그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환난 중에 저는 기뻐하였나이다…, 주님의 잔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제 전 존재를 흠뻑 취하게 하시나이다!”

우리는 아벨이 바친 희생 제물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것은 양 떼 가운데 가장 좋은 흠 없는 어린 양을 바치는 것, 건강하고 거룩한 몸을 바치는 것, 우리의 하느님이신 당신께 대한 단 하나의 사랑만을 지닌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깊은 공부를 통해 양성되었으나 당신의 지혜에 굴복할 정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일만 생각할 어린이처럼 순수한 영혼을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 이제부터 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희생 제물을 받아 주소서!

어둠 속에 헤매는 이들을 비추려면 등경 위에 놓인 불처럼, 마지막 한 방울 기름이 다 탈 때까지 제대 옆에서 타오르는 등잔불처럼,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의 스승이신 주님은 시샘 많은 연인처럼,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사랑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가진 무엇이나 당신께 바치고 우리 각자를 위해 당신께서 표시해 놓으신 그 길을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을 제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시에 당신을 저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당신 친히 가난하게 되기를 택하셨으니, 제가 거룩한 가난을 사랑하도록 해주십시오. 제 비록 억만금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은총에 힘입어 가난하게 살고 가난하게 죽을 결심을 합니다.

“내가 보기에 주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너무 보잘것없군요”라고 말했더니 그대는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그대의 삶을 두고 “하느님의 뜻을 사랑한” 삶이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주님께 바쳐질 때, 하느님 생명의 힘으로 가득 차나니!

그대의 사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십시오. 하늘 전체가 그대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대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그대는 어디에 있든지 기쁘게, 사랑으로, 열정을 갖고 그분을 본받으며 그분과 일치하도록 혼신으로 노력하십시오. 비록 환경이, 심지어 영구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성실함입니다.

그대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의 임금이시여, 저는 당신이 큰 소리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나이다. 그 말씀은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나이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다음에 그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주님, 마음을 다하고 육신을 다하고 능력을 다해 제가 응답하나이다. ‘당신이 저를 부르셨으니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

그대의 이 응답이 날마다 현실이 되기를!

그대는 절제와 용기와 책임감을 보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들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늘그막에야 얻습니다. 그대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초자연적 전망을 잃지 않는다면, 아직 젊을 때 이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사도직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이 덕목들을 하느님께서는 그대에게 노인들에게 주시는 것 이상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대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누립니다. 하느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우리가 지닌 아픔들이 끝나도록 하려면 그분께 그 아픔들을 털어놓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습니다.

그대는 내게 이렇게 물었지요. 그리스도께서 2000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을 이 지상에서 활동하셨는데 왜 세상은 이 모양입니까? 그대는 또 아직도 우리 주님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고 물었지요.

저는 그대에게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탓이라고. 우리는 구속 사업의 협력자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지만, 때때로 어쩌면 자주,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겸손하신지요. 대조적으로 참으로 부끄럽게도, 나는 두엄 가루에 불과하면서도 너무나 자주 나의 교만을 존엄 또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나의 교만을 위장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따를 수많은 기회를 놓치거나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 기회들을 초자연적으로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감미로우신 어머니!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그 광기에 저희가 빠지게 해주십시오.

감미로우신 성모 마리아님! 사랑이 우리 안에서 팬 속의 불꽃이나 시신이 부패할 때 가끔 생기는 도깨비불 같은 것이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진짜 불이 되게 해주십시오. 닿는 것은 무엇이나 다 태워 버리는 불이 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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