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풍부한 결실

하느님의 사랑에 충실하게, 아주 충실하게 응답하십시오. 그리고 이 충실함으로 그대가 받은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들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의 주님, 예수님! 당신 은총을 느끼도록 해주십시오. 당신 은총으로 제 마음을 비우도록 도와주시어, 저의 벗, 저의 형님, 저의 왕, 저의 하느님, 저의 사랑이신 당신으로 가득 차게 해 주십시오.

그대가 기도와 희생과 행동으로 사도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가 행복하지 않으며,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확실한 신호입니다.

행복하고 선한 사람은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늘 주고자 합니다.

그대가 참으로 자신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 때, 그대는 하느님 손에 합당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어 “가서 모든 사람을 만나라.” 하고 명령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십니다.

세상이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도록 하십시오. 그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온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이고 그들을 정말로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인도할 것입니다.

작은 일을 충실히 하십시오! 아들이여, 그대의 일은 단지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매 순간, 지극히 평범한 순간에도 영원성이 힘차게 메아리치게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교리)의 씨앗은 신심(경건함)의 씨앗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대가 경건할 때만이 교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서 그대가 하는 일을 비효과적으로 만드는 세균들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류가 흐르지 않고 차단되면 공장의 거대한 기계들도 힘을 못 쓰고 멈춰 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와 고행 없이 사도직은 결실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대가 은총의 자극을 충실히 따른다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영속적인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효과를 거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자신은 그 효과를 확인하거나 보지 못한다 해도 말입니다.

올바른 지향은 “오로지, 그리고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영성 생활의 명백한 표현인 사도직은 일상사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초자연적으로 만들고자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의 사랑이 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책 읽은 곳을 표시하는 책갈피처럼 굵고 힘찬 글씨로 “성령의 불길로 타오르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갈피를 늘 갖고 다녔습니다. 그가 문구를 썼다기보다는 (가슴에) 새겼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여, 나는 하느님의 이 불길이 그대 영혼에 각인되고 그대 입에서 빛나고 그대가 하는 모든 일에서 타올랐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대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아는 자녀처럼 거룩하게 ‘철면피’한 어린이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꼭 필요한 것이 없을 때조차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평화로 가득 차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직 적어도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그대는 날마다 우리 모든 가톨릭 신자가 충실하도록, 또 성인이 되기 위해 결연히 투쟁하게 해달라는 지향으로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아주 합당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앙의 강한 유대로 우리와 결속된 이들을 위해 우리가 다른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도 성덕을 추구하고자 더 노력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에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그들의 삶은 큰 실패에 봉착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구름처럼, 비둘기처럼 자기들의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러자 어떤 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구름은 바다와 강들로부터 올라와서 제 경로를 따라 떠돌며 흘러가다가 다시금 그 원천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나는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야말로 세상을 비옥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도록 만드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 하느님의 물줄기는 땅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흠뻑 적시고 자신은 많은 불순물을 씻어낼 것입니다. 그 물줄기는 깨끗한 샘물을 솟게 하고 그 샘물은 시냇물이 되고 거센 강물이 되어 인류의 갈증을 해소할 것입니다. 그때 그대는 그대의 피난처, 그대의 무한한 바다인 그대의 하느님께 돌아와서는 그대가 사도직으로 행한 영적 물주기 덕분으로, 또 세상 끝날까지 지속하면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는 하느님의 물 덕분으로, 열매들이 계속 영글어 가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들이여,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마저도 그분께 봉헌하십시오.

슬픔? 이러저러한 일로 인한 좌절? 그대는 이것이 그대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분은 선하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사랑으로 그대를 친히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스승을 따르는 그대의 방식을 솔직하게 검토하십시오. 그대의 봉헌이 아무런 감흥이 없는 믿음으로 하는 메마르고 사무적인 것이 아닌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온종일 지내면서 겸손도, 희생도, 선행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게 겉치레일 뿐이고, 매 순간 세세히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전혀 없는 것이 아닌지. 한 마디로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닌지를.

만일 그렇다면 그대의 사도직이 효과가 없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다시 행동하십시오. 성모님이 손수 그대를 인도하시도록 하십시오.

크든 작든 간에 어떤 것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일에 직면할 때, 그대의 수호천사에게 청하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또는 그대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시도록 요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대의 영혼, 나의 영혼 그리고 은총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의 영혼 가운데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많은 소금을 지니고 더 많은 빛을 얻어서 저마다 제 자리에서 하느님께 받은 그 선물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선물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겸손하고 경건하게 또 어머니인 교회와 잘 일치함으로써 나눌 수 있습니다. 포도송이들이 얼마나 큰지요! 그런데 떨어져 나간 가지는 결실을 내지 못하고 말라서 죽고 맙니다!

예수님, 저의 빈약한 마음을 당신 사랑의 큰 바다로 채워 주소서. 그 파도는 저를 깨끗이 씻고 저의 모든 비참함을 없앨 수 있나이다. 당신 성심의 저 지극히 정결하고 열정적인 물을 제 안에 쏟아부어 주시어 당신을 사랑하려는 제 갈망이 완전히 채워져서 당신의 거룩한 열정에 대한 저의 응답을 더 머뭇거리지 않게 하소서. 그러면 정녕 제 마음이 사랑하고픈 갈망으로 부서져 내려 당신의 그 사랑을 쏟아부을 것이고, 그 사랑은 지극히 풍요롭고 생명을 주는 저항할 수 없는 격류 속에 다른 이들의 마음에 도달해 그들의 마음이 이 생명수와 접촉함으로써 신앙과 사랑의 떨리는 힘으로 고동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미사를 삶으로 살아가십시오!

“저의 하느님,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서도 성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하고 사랑으로 자신에게 되풀이하곤 했던 저 사제의 생각이 그대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예전에 한 약속을 실행하여 저는 날마다 우리 주님의 옆구리 상처에 숨어 머물겠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그대는 엄청나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만큼 악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겸손하게 또 희생정신으로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다면, 그대는 선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와 그대 동료들과 그대의 저 착한 어머니인 교회를 위해 선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교만에 떨어진다면 그대는 큰 악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안일함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만일 편한 것만을 좋아한다면 그대는 방해물이 될 것입니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다른 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사도직 수행을 중단해서는 안 되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일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거나 그대의 신심 생활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됩니다.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대는 때때로 영혼들을 집안의 화롯불을 다루듯이 다루어 부젓가락으로 깜부기불을 없애야 합니다. 깜부기불은 아주 밝게 빛나지만, 하느님 사랑의 불이 꺼져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감실로 갑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있고 그분의 가르침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다른 영혼들에게 양식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대가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그분의 사랑이 지니는 희열을 맛볼 때, 그분께 약속하십시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이상 없이 떠돌며 불행하게도 짐승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이를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대의 인생 여정이라도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입니다.

“자비와 사랑이 있는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라고 우리는 성무일도 찬가에서 노래합니다. 이를 두고 한 영혼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형제적 사랑은 위대하고 경이로운 보화입니다. 그것은 단지 위안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물론 종종 위안이 필요하기도 합니다만, 이 형제적 사랑은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확신을 전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위한 이웃의 자비에서, 또 이웃을 위한 우리의 자비에서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피하십시오! 그대의 삶을 하느님께서 아시기를 빕니다. 성덕은 효과가 엄청나지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도움을 줄 때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하십시오. 칭찬받지 않도록 또 보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그대가 활동하는 그 환경에 소금처럼 드러나지 않게 맛을 내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고 멋지게 되도록 도우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가치 있는 유일한 방향인 그리스도교적 방향으로 가도록 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느님과 맺은 충성스러운 우정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과 충성스러운 우정을 맺어야 합니다.

그대는 내가 ‘믿음으로 이끄는(ad fidem)’ 사도직에 관해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참된 신앙을 알지 못하지만 숭고하며 관대하고 쾌활한 사람들이 있는 세상 전체가 우리가 활동해야 할 아주 놀라운 영역입니다.

사무실과 상점에서, 미디어 세계에, 법정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광산과 들판에서 수많은 선남선녀의 귀에 외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면의 삶을 지주로 삼고 성인들의 통공으로 이 서로 다른 모든 환경 속에 하느님을 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사도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그분이 거처하시는 성전으로 삼음으로써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간직한 사람들은 이 진리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쁜 계략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잘 숙고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대 영혼 속에 들어오시기 전에 그대에게 허락을 청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그대가 자유로이 당신을 따르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지만 그대를 찾은 분은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일을 통해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보다 더욱 큰 승리를 주님께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유다의 배신, 올리브 동산의 고뇌, 저 캄캄한 밤 같은 장면들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불을 놓으러 오신 분의 저 불꽃으로 세상을 타오르게 하는 데 성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이신 그 진리의 빛은 절대로 꺼지지 않은 밝은 빛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비출 것입니다.

그렇게 놀란 표정을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대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영혼에 건강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온 세상을 위해, 모든 종족을 위해, 온갖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모든 종교인을 위해, 종교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만 지닌 이들과 신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영혼들을 위한 이러한 열정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확실하고 분명한 표징으로서, 예수님께서 오시도록 만들 것입니다.

머나먼 땅에서 영혼들과 함께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의 눈이 얼마나 반짝였는지요! 그들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대양을 건널 준비가 돼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클 때는 세상은 실로 아주 작습니다.

단 한 사람의 영혼에도, 아무 영혼에도, 그대는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절대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다른 사람들이야, 그들이 원한다면…아니면 지옥에 가버리든지.”

이런 태도는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부합하지도 않으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가톨릭의 보편성을 이해하고 실천할 때, 또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든 피조에게 선포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을 때, 그는 그 사도의 가르침처럼, 자신이 “모두가 구원받도록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대는 형제들을,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비록 그들에게 결점이 있다 해도 그것이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가 아닌 한 전혀 결점이 아닌 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장점들만을 사랑한다면, 그들을 이해할 줄 모르고, 변호할 줄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른다면 그대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게으름이나 나쁜 표양으로 형제들의 영혼을 망가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그대의 격정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그리스도교 생활에 대한, 모든 사람이 효과적인 영성 생활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성덕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든 이와 아주 가까이 있다고, 대단히 가까이 있다고 그대는 행복해하면서 거듭 말했습니다.

그대는 내가 그대에게 말한 사랑의 친교 덕분에 흐뭇해했습니다. 지겨워하지 말고 사랑의 친교가 계속 살아 있도록 하십시오.

그대는 그대의 벗이 외롭지 않도록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이 되는 놀라운 무기 곧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말하던 대로 그대에게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친구를 위해 그대가 할 바를 하십시오. 그대가 비슷한 상황에 있을 때 다른 이들이 그대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바로 그것을 하십시오.

친구를 창피스럽게 하지 말고 도와야 합니다. 친구가 힘들다고 여기는 것들을 쉽다고 여기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항상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문제점들이나 의문들을 차분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이고, 이해할 것이며, 용서할 것이고, 필요하면 바로잡을 것이고, 세상을 사랑으로 채울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문제들에서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말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나쁘게 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웃의 선이 걸려 있을 때, 그대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온화하게 절제하며 이야기하십시오. 그리고 화를 내지 마십시오.

사람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사건이나 교리를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거론한다고 해서 누구를 심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릇된 신앙에서 또는 식별력의 결여로 인해 바른 양심이 결핍된 사람이 그대의 말을 두고 험담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일부 가난한 사람들은 그대가 하는 선행을 성가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이행하거나 조직하지 않는 일은 선이 아니기나 한 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이해 부족이 그대가 하는 일을 느슨하게 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당장 더 잘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대의 일이 지상에서는 박수를 받지 못한다면, 천상에서 더욱 큰 환대를 받을 것입니다.

사랑의 결여, 형제간의 험담과 지어낸 말에 바탕을 둔 내부적 다툼으로 활동의 50%가 허사가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다른 한편 사도직에 불필요한 건물을 짓는 데에 활동의 25%가 허비됩니다. 험담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많은 집을 짓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 100% 사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사제들과 미래에 사제가 될 사람들이 참으로 동료 인간들을 차별하지 않고 날마다 더욱 사랑하도록 기도하십시오. 또 동료 인간들이 사랑받는 법을 알게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온 세상의 사제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사도직의 풍요로운 결실을 내도록 기도하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사제직에 있는 나의 형제여, 늘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십시오. 그대가 하느님께 속한다면, 그대의 대화는 전혀 단조롭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영혼들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이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특별한 존경으로 사제의 설교를 경청해야만 합니다.

신자들이 그 사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몹시 기뻤습니다. “신부님은 혼을 다해, 온몸으로 설교하십니다.”

사도의 영혼이여, 이것이 그대의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주님, 제가 사람들을 ‘압박하여’ 그들 모두가 사랑의 화톳불로 타오르게 하는 법을 알게 하소서. 그러면 그들은 우리 활동의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사도로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빛과 하느님의 소금을 지니고 말입니다.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그러나 깊은 내적인 삶으로, 주님과 깊이 일치하여 살아가면 우리는 빛을 발할 것입니다. 부패와 어둠을 피하게 될 것입니다. 평온함의 열매와 그리스도교 교리의 효력을 주변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이 땅의 모든 교차로에 씨앗을 퍼뜨리러 나갔습니다. 우리의 과제가 얼마나 복된 일이지요!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모든 환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돋아나고 결실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며 이 땅은 그 결실을 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축복은 온갖 좋은 결실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성인들, 하느님의 사람들을 가꾸는 데에 필요한 기후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다음에 우리에게 결실을, 그대와 내가 결실을 거두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수확물이 우리가 진짜 전적으로 헌신하지 못한 탓으로 볼품없는 또는 말라비틀어진 열매여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기에 풍요로운 결실을 기대하십니다.

그대는 자신의 성소를 씨앗들을 담은 캡슐이라고 보았습니다. 때가 되어 캡슐이 터지면 씨앗들이 퍼져나가 한꺼번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거대한 인간 군상 속에서―우리는 모든 영혼에 관심이 있습니다.―그대는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은총의 도움에 부응하여, 세상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의 빵에 맛을 내며 품질을 좋게 하고 양을 많게 하는 누룩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빵은 다른 영혼들을 살찌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수들―그들 중 더러는 예수님의 친구로 자처하기까지 합니다.―은 인간 지식을 갑옷으로 두르고 무력의 칼을 휘두르며 마치 그 필리스티아인이 다윗을 비웃고 멸시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습니다.

오늘날에도 증오와 거짓과 오만과 세속주의와 무관심주의의 골리앗은 땅에 고꾸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약해 보이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무기들―곧 기도와 속죄와 행동―에 상처를 입은 저 거짓 이데올로기들의 거인에게서 그릇된 교리의 갑옷을 벗겨내 버리고 우리 동료 인간들을 참다운 지식과 그리스도교 문화와 그리스도교 생활 양식으로 무장시켜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대항하는 캠페인에 많은 단체가 손을 잡고 공모합니다. 개중에는 선하다고 자처하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문, 전단, 풍자, 중상, 선전 구호 등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그 사람들을 데려갑니다. 곧 지옥으로 데려갑니다. 그들은 형체 없는 대중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마치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이런 악의 조직의 손아귀에서 사람들을 빼내어 하느님을 섬기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성사를 자주 받는 신자들조차도 상당수가 자신들의 영혼에 조금도 유익하지 않은 나쁜 출판물들을 읽습니다.

평온하게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교리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나쁜 출판물들을 읽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부끄러워서 가족이 그런 것을 샀다고 말하지만 아마도 그들 자신이 샀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에 관해서는 사랑으로 확고하게 진리를 옹호하십시오. 거룩한 철면피가 되어 오류들을 지적하십시오. 그 오류들은 때로는 작은 계략일 수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독설이나 뻔뻔스러운 무지에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통으로는 하느님 말씀이 지니는 풍부한 결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옵니다.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대가 영혼들을 위해 주님께 부르짖어도 주님께서는 마치 귀가 먹은 것처럼 그대의 부르짖음을 들으시지 않을 때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사도직 활동이 전부 부질없다고 여기기까지 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똑같은 기쁨으로, 똑같은 떨림으로, 똑같은 갈망으로 계속 일하십시오. 강조합니다만 하느님을 위해 일할 때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들이여, 이 세상의 모든 바다가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기 더 힘든 곳은 또한 고기잡이가 더 필요한 곳입니다.

그대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올바른 삶과 훌륭하게 해내는 그대의 일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곧 친척과 친구와 동료와 이웃과 학생들에게 좋은 표양을 보여야 합니다. 그대의 직업을 이행하고 그대의 업무에 따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대는 어설퍼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터에서,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그대에게 다가오는 영혼들의 굶주림을 채워 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대가 의무를 기꺼이 너그러이 수행해 낼 때, 그것은 또한 다른 영혼들을 위해 주님한테서 풍부한 은총을 얻어 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친구가 되도록 그대는 그대가 그리스도인인 이유를 세상에 알리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대가 그대의 재능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그대에게 당신의 풍부하고 효과적인 은총뿐 아니라 머리와 손과 지적 능력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를 살리고 귀먹은 이를 듣게 하고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불구인 이를 걷게 하는 기적들을 끊임없이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대의 거룩한 본업이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 영혼들에는 도움이 될 번제물이 되게 하십시오.

늘 타오르는 불씨여야 하는 그대가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그대는 버려지는 숯이나 훅 불면 흩어지는 잿더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대는 불타야 합니다. 불타는 뭔가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의 불꽃이, 충실함의 불꽃이, 사도직의 불꽃이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복되신 동정녀께 간구하십시오. 언제나 어머니로서 당신을 그대에게 보여주시도록 계속 청하십시오. 아울러 당신 아드님의 은총을 내려주시고, 건전한 교리를 명확하게 그대의 지성에 심어주시며, 사랑과 순결을 그대의 마음에 심어주시어 그대가 하느님께 가는 길을 알아 많은 영혼을 하느님께 인도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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