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패배

시야가 흐릴 때, 눈이 침침할 때, 우리는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세상의 빛이며 병자들을 치유하러 오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러하기에 그대의 약함과 비참함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그대를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비참함에서 나는 친구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신 채 내 곁을 지나치시는 것 같다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곧 나는 생각을 바꾸었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는 신뢰하며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사랑이신 분, 그게 아닙니다.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다시는 떨어져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대는 주님의 사랑으로 또 끊임없는 회개로 정화되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십시오.

성모님께 그대를 사랑하신다는 증표로 회개의 선물을 주시도록 청하십시오. 그대의 모든 죄에 대해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해 사랑의 슬픔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달라고 청하십시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담대하게 이렇게 청하십시오. “저의 생명이며 희망이신 어머니, 당신 손으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 안에 아버지 하느님을 불쾌하게 해드리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게 해주시어 어머니와 제가 그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게 해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오 너그러우시고, 오 사랑에 넘치시며, 오 감미로우신 동정 마리아, 저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의 지극히 사랑스러운 뜻을 이행함으로써 제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얻어 누리게 해주십시오.”

천상 어머니! 열성과 헌신과 극기를, 한 마디로 사랑을, 제가 한 번 더 다시 얻게 해주십시오.

게으르지 마십시오. 결심하기 위해 새해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하루하루가 전부 좋은 결정을 내리기에 좋은 날입니다. 오늘, 지금!

저 가엾은 패배주의자들이나 새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새롭게 시작하기를 미루지만, 그 후에도 그들은 결코 실제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나약함에서 잘못 행동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분명한 양심을 가지고 그대가 회개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은 거룩한 일이야.” 또는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하고 말하거나 생각할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기억하십시오. 영적 힘은 감각(오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오관을 잘 감시하십시오.

그대가 아주 잘 알고 있듯이, 그대의 길에 합당하지 않은 일들에 동의할 때 그대는 평화를 잃어버립니다.

일관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결심하십시오.

그대가 하느님께 입은 호의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늘 그대 안에서 행동을 부추기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시련의 때에 특히 그러해야 합니다.

그대가 저지를 수 있는 한 가지 치명적인 질병, 용납할 수 없는 실수가 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 하느님 자녀의 정신으로 싸우는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마비되어 홀로 참혹하게 살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겁쟁이는 벳자타 못가의 중풍 병자가 주님께 드린 그 말씀을 주님께서 하시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그대가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는 그 사람이 아니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금욕을 위한 분투는 부정적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에 찬 긍정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스포츠입니다.

좋은 운동선수는 첫 경기에서 단 한 번 승리하려고 싸우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차분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훈련하면서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비록 첫 경기에서는 이기지 못할지라도 거듭거듭 계속 노력합니다. 그 장애물을 극복할 때까지 단호하게 노력을 계속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당신은 모든 일에서 저의 희망이십니다. 제가 회심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좋은 벗인 그 사제는 서명할 때 “죄인”이라고 쓰곤 했는데,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도 정화해 주십시오!

그대가 크든 작든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뒤돌아서 하느님께 달려가십시오.

시편의 말씀을 음미하십시오.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최민순 역 시편 50,19; 성경 시편 51,19)

그대의 마음과 영혼으로 계속 되새기십시오. ‘주님, 제가 쓰러졌을 때 당신께서 저를 일으켜 주신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또 제 죄를 용서하시고서는 당신 성심께 가까이 가도록 저를 도와주신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생각을 계속 되돌리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절대로 하느님에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그대는 자신을 주인이 옷을 벗겨 버린 가련한 사람이라고 여기는군요. 그대는 죄인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우리의 첫 조상이 알몸임을 부끄러워하던 것을 이해하는군요.

그대는 늘 울어야 합니다. 사실 그대는 울었고 큰 시련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아주 행복합니다. 다른 누구와도 자리를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대는 평화와 기쁨을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이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 행복의 비밀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괘념치 않겠지만, 나는 왜 사람들이 종종 그대를 두고 ‘평화의 사람’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련한 피조물인 인간의 역량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만을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시간을 허비합니다. 베드로가 경험한 것이 말 그대로 다시 반복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교회와 일치하지 않고 교회와 함께 생각하지 않은 채 자기들 마음대로 활동한다면, 그들의 사도직이 무슨 효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대는 그들이 그 복음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에 귀 기울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유야 어떻든 그분의 사도직이 아닌 ‘우리의’ 사도직을 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방식을 바로 잡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내가 지금 베껴 쓰고 있는 글을 쓴 사람은 그대였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은 아십니다! 예수님, 당신의 사랑하시는 케파가 한 이 말을 제가 쓰라리면서도 감미로운 호칭기도로 얼마나 자주 되풀이하는지요.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저는 알지만, 저 자신에 대해서 정말로 자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분명하게 드릴 수가 없군요. 불성실하고 배은망덕한 제 삶에는 당신을 모른다고 부정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 주님은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예수님, 제가 하는 행동들이 제 마음속 이 열망을 절대로 거스르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기도를 그대의 기도로 삼아 계속 바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그대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이 말을 반복하십시오. “주님, 저의 눈물이 뉘우침의 눈물이었더라면!”

그대가 원하는 그 슬픔을 허락해 주시도록 그분께 겸손하게 청하십시오.

나는 얼마나 비열하게 처신했으며 또 하느님의 은총에 얼마나 불성실했던가.

어머니, 죄인들의 피난처, 저를 위해 빌어 주시어, 하느님께서 제 영혼 안에서 하시는 활동을 제가 다시는 절대로 방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그렇게 그리스도께 가까이했건만 그런데도 그와 같은 죄인이라니요!

그대를 위한 예수님의 저 친밀한 사랑이 그대를 감동하게 해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습니까?

내게 참다운 기쁨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하지만 나의 부당함을 쓰라리게 인식하기에 성 바오로와 함께 “나는 얼마나 가련한 자입니까!” 하고 외치는 것이 마땅할 따름입니다.

그대 자신이 만든 모든 장애를 완전히 무너뜨리고자 하는 그대의 갈망을 키워야 할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그대에게 여러 결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놀라워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런 결점이란!

그 결점들을 없애도록 분투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 약한 점들을 모두 깨닫는 것이 좋은 일임을 확신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교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만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합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경탄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그대의 가련한 육신, 그대의 비참한 육신의 그 모든 무게를, 그대를 이루고 있는 그 가련한 흙덩어리의 그 모든 비열함을 의식할 때도 경탄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저 부르심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이해하시고 저를 돌보십니다. 그분은 저의 형님이자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삶은 행복합니다. 아주 행복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대는 슬픔이 할퀴고 간 자리에 고통을 느낍니다. 고달픔을 거의 항상 피부로 실감합니다.

이렇게 기쁨과 슬픔은 각자 자신의 “인간” 안에서 나란히 갈 수 있습니다. 기쁨은 새 인간 안에서, 슬픔은 옛 인간 안에서.

겸손은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데서 생겨납니다.

주님, 당신께 선물을 하나 청합니다. 사랑, 저를 깨끗하게 해주는 사랑을 선물로 원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물도 청합니다. 제가 겸손으로 충만하도록 저 자신을 아는 선물 말입니다.

성인들은 삶이 다할 때까지 올곧게 분투하는 사람들입니다. 비틀거리고 쓰러질 때마다 늘 일어서고, 겸손과 사랑과 희망으로 다시 한번 자기 길을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대가 저지른 잘못들이 그대를 더욱 겸손하게 하고, 그대에게 하느님의 도우심의 손길로 더욱 시급하게 이르도록 한다면, 그것들이 성덕에 이르는 길입니다. “오 복된 탓이여!” 하고 교회는 노래합니다.

기도는-나의 기도조차도-전능합니다.

겸손은 각 영혼에 자신의 결함을 보고 상심하지 말도록 가르칩니다.

참된 겸손은 용서를 청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제가 만일 나병 환자라 할지라도 저의 어머니는 저를 포옹하실 것입니다.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으시며 제 상처에 입맞춤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우리가 상처투성이 나병 환자 같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머니!”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상처에 입맞춤하듯이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고, 그 상처들은 치유될 것입니다.

참회의 성사에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공덕이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그분이 두 팔을 벌린 채 십자가 위에 계시는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입니다. 나무에 달려 계시는 것은 못에 박혀서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사랑에서입니다.

나의 아들이여, 만일 쓰러지거든 즉시 고해성사를 하러 가고 영적인 지도를 얻으려고 하십시오. 그대의 상처를 보여드려 제대로 치유되고 전염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수술을 받는 만큼이나 그대를 아프게 하더라도 말입니다.

솔직함은 하느님과 합일하여 진보하는 데 절대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아들이여! 그대 안에 추한 ‘두꺼비’가 들어앉아 있다면 꺼내서 내던져 버려야 합니다. 늘 당부했듯이, 그대는 아무도 알지 않기를 원하는 그것을 제일 먼저 고백해야 합니다. 고해성사로 그 두꺼비를 내다 버리고 난 사람은 얼마나 후련하다고 느끼는지요.

제가 비록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고 해도, 그 어떤 악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비참함도, 원수의 유혹도 저는 걱정하지 않으리니, 주님,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방금 저의 비참함을 생각하면서 당신께 말씀드렸습니다. 이 아들에게 속아 주십시오. 어린 자녀들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자비롭고 좋은 아버지들이 자녀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을 자녀들에게 쥐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서로 속아 주면서도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 모두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사랑이신 예수님, 또다시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당신의 것이오니,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대는 자신이 덕도 재능도 능력도…몹시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그대는 눈먼 바르티매오처럼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고 싶지 않나요?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대가 수없이 말씀드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열망입니까!

그분은 그대의 말을 들으시고 도와주러 오실 것입니다.

그대의 영혼 안에 속죄하려는 열망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날마다 크게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성실하다면 그대는 자신을 승리자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대는 인생에서 일부 전투에서 질 수 있겠지만, 패배란 없을 것입니다. 그대가 순수한 지향으로 또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려는 갈망으로 행동한다면 ‘실패’ 같은 것은 없음을 그대는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이기든 지든 간에 결국에는 늘 승리할 것입니다. 그대의 일을 사랑으로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하고 마음으로 우러난 그대의 탄원에 귀 기울이셨음을. “저의 주님, 저는 ‘다른 이들이’ 하는 말에는 괘념치 않습니다. 저의 부질없는 삶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만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것’이 하느님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약점들도 바로 잡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이해하시며 용서하십니다.

예수님, 제가 당신께 무엇을 해드렸기에 이토록 사랑해 주시는지요? 저는 당신의 마음을 상해 드렸고…그리고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제 삶에서 하고자 하는 전부입니다.

제가 스승님께 받는 그 모든 위안은 확실히 제게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나 스승님을 생각하고 사소한 일에서 스승님을 섬기는 가운데 큰일에서도 스승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결심: 일상생활의 가장 사소한 일에서도 착하신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순수한 애정으로 하느님께, 우리의 어머니께, 영혼들에…우리 마음을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앙갚음하려 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신에 벌레들을 키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마음을 다해 말씀드리십시오. ‘저는 비참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데도 사랑에 미쳤습니다. 사랑에 취했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저의 많은 잘못들을 참으로 슬퍼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언제나 십자가 위에 머무르겠습니다.

육신을 통해 잃어버린 것은 육신을 통해 갚아야 합니다. 기꺼이 보속하십시오.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참회의 정신으로 날마다 자기를 극복하게 해달라고 청하십시오. 그리고 이 끊임없는 승리를 겸손하게 그리고 항구하게 인내하면서 봉헌하십시오.

개인적으로 기도하면서 육체의 약함을 체험할 때마다 이렇게 되풀이하십시오. “주님 저의 이 가련한 육신이 지칠 때나 반란을 일으킬 때 십자가를 주십시오.”

저 사제가 설교한 말이 얼마나 맞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저의 배은망덕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저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많이 사랑하였기에, 그녀가 엄청나게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면, 저는 더 많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제게는 갚아야 할 얼마나 큰 사랑이 빚이 있는지요.”

주님, 미친 듯이 영웅적인 덕행을 실천하도록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설사 제가 당신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주님 은총의 도움으로 저는 절대로 다시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자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즉각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했기에 살아났습니다. 만일 그가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로 다시 죽었을 터입니다.

진심 어린 결심: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하느님 안에 희망을 두며, 언제나 하느님을 사랑하기. 설령 우리가 라자로처럼 썩어 부패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기에.

그리스도인의 이 사랑스러운 모순을 경탄합시다. 하느님 안에서 피신처를 찾고 “하느님처럼” 되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비참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분과 함께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넘어졌을 때 또는 비참함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그대는 굳센 희망으로 이렇게 반복하십시오. ‘제가 얼마나 아픈지를 주님 보십시오. 그리고 오셔서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주님. 당신은 저에 대한 사랑에서 십자가 위에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

확신에 차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지극히 사랑에 찬 성심께 계속해서 소리쳐 부르십시오. 그분께서는 그대를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나병 환자들을 고쳐주셨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절대로 달아나지 않겠다는 더 큰 열망을 날마다 지니십시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어머니,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저의 가련한 마음이 얼마나 눈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십시오. 저는 저의 하느님 마음을 상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압니다. 그리고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등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보잘것없음과 외로움의 무게가 저를 너무나 짓누릅니다! 하지만…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감미로운 귀부인이신 어머니와 저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절대로 저를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의 육신이 반란을 일으키고 저의 믿음을 거슬러 온갖 방식으로 악마가 논증을 펼치더라도,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고 믿습니다.

다른 언어로 된 이 챕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