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성격

주님께서는 진부함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확고한 발걸음으로 모든 종류의 환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강하고 씩씩한 영혼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조용하고 균형잡힌 성격 불굴의 의지, 깊은 신앙과 열성적인 경건성: 이것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불가결한 특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짜 돌에서조차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꺼내낼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돌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굳은 바위가 형태가 없다 해도, 그 단단한 돌에서 좋은 건축용 돌을 잘라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평범한 톱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그의 행동에서 철저하게 인간적이고, 동시에 영원한 일들의 신선함을 반영하도록 부르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길고, 참을성 있고, 영웅적인 신앙형성의 과정을 거친 영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말하기를 매일 당신 자신 안에서 새로운 일들을 발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그대는 지금 당신 자신을 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진실로 사랑할 때에는, 그대는 더욱더 사랑하는 방법들을 발견합니다.

만약에 누구인가가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에서 행동하는 방법을 보면서, 그들은 순하고 쉽게 이용당한다고 결론짓는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난날에도, 그리고 실로 지금도, perfectus Homo —완벽한 사람이십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그대에게 어떤 타고난 자질이나 기량을 주셨다면, 그대는 단순히 혼자서 그것을 즐기거나 그것을 과시해서는 안되고; 그대는 그것을 그대의 이웃에 봉사하는 데 자비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는 당신 자신과 똑같은 이상을 함께하는 무척이나 많은 영혼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그대가 봉사하기 위해 지금보다 어떤 더 좋은 경우를 발견할 것입니까?

물질주의적이고, 환락추구적이고, 신심없는 속세의 압력과 영향 아래서, 우리가 어떻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것같이 행동하지 않는 자유를 요구하고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녀는 그 자유를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단번에 영원히 획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는 그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을 방어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우리의 자유가 우리의 주위환경에 얽매어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친척들과 동료들과 친구들은 변화를 알아차렸고, 그것이 임시적인 일면이 아니고 그대가 더이상 당신 같지가 않음을 인식하였습니다.

근심하지 말고 계속하십시오. “내 안에 살아계시는 분은 이제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곧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바의 사실입니다.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뿐만 아니라 왜 아니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십시오. 배워야 할 점, 혹은 바로잡아야 할 점을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때는 그대가 비관적이고, 주저하고, 무감동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완벽하게 변모했습니다: 그대는 용기있고, 낙관적이고, 자신있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마침내 하느님께만 의지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훌륭한 인간적인 덕목들을 지니고 있으나 초자연적인 견해가 전연 결여되어 있을 때면 대단히 딱한 상황에 놓여집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덕목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묵상하십시오.

가톨릭적, 보편적인 사고를 하고 싶어하는 당신에게 몇 가지 특성을 적겠습니다:

-정통 가톨릭의 항구적 불변에 대해 넓은 안목을 갖고 제대로 이해한다.

-철학과 역사해석에 있어 결코 경솔해지지 않고 바르고 건전한 열의로써 전형적인 전통사상을 새롭게 제시한다.

-현대의 과학과 사상의 동향을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다.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현재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를 보인다.

필요하다면 남과의 의견 차이를 잘 표현할 줄 알아야 하지만 미움을 사지 않도록 애덕을 갖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좋은 형성을 누렸다면 높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노력이 없다면, 다시 말해 “언어의 재능”이 결핍되어 있다면, 좀처럼 알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항상 예의바르게 대하십시오. 당신은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하지만 스스로 당신의 반대자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실수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면 각별히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응석받이로 기른 아이를 보고 불쌍히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자신을 부드럽게 다루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약해지는 걸 모릅니까?

게다가 악천후와 가뭄에 시달린 야생화가 더 향기롭다는 것도 알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지만 그 사람이 장차 져야 할 책임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 사람의 이해타산을 떠난 일이나 말, 실속 있는 저작 등이 사람의 눈에 띈 적은 없습니다.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심사숙고할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늘 깊이 생각하는 듯한 느낌은 주고 있습니다. 얼굴 표정이나 태도에서 마부 같은 무거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분별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바꾸도록 도와주지 않는 한 그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학자인 척하는 사람들은 박학한 사람의 소박하고 겸손한 태도를 무지하다고 생각합니다.

명령을 받는 순간, 어떻게 하면 명령을 변경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투로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분열과 혼란의 근원입니다.

경험, 세상에 관한 대단한 지식,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능력, 과장된 예리함, 비판 정신. 그대의 사업과 사회적 관계에서, 그 모든 것들은 그대가 약간 냉소적으로 되어버릴 정도까지 그대를 너무 멀리 끌고갑니다. 초자연적인 정신의 결핍인, 그 모든 “과도한 현실주의”는 그대의 내적생활까지도 정복해 버렸습니다. 단순해지지 못하는 것을 통해서 그대는 차갑고 무감각하게 되어져 버렸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대는 좋은 사나이지만, 그대는 당신 자신을 마키아벨리같이 상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대는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지 고달픈 모략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대의 그 좋은 유머는 존경할 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절대적으로 농담으로 취하는 것은, 너무 멀리 간 것임을 그대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위치는 전연 다릅니다. 그대는 당신 자신의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의지가 없기 때문에, 그대는 당신보다 나은 다른 사람들을 조롱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저는 그대가 영리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격정은 그대를 바보같이 행동하도록 끌고갑니다.

그대의 것은 균형잃은 성격입니다. 그대는 부서진 건반입니다. 그대는 고음과 저음에서는 잘 연주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음이며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듣는 음인, 중간에 있는 음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박학하고 씩씩하고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에게, 이른바 ‘선량한’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는 이 일을 변호하면, 그의 분야에서 높은 지위를 걸게되고 위태로워 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명예를 멸시하던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나 무거운 어조로 제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 영혼의 구원을 걸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닦이고, 영혼은 영혼으로 닦인다.

“하늘에는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 두 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났습니다.” 이 점에서, 당신과 나와 모든 사람이 은총과의 일치보다 우리의 성격을 더 완전하게 하는 것은 없음이 확실해질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본받도록 해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대는 완전한 남자나 여자가 될 것입니다.

다른 언어로 된 이 챕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