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종교를 일련의 부정적인 주장으로 줄이거나, 또는 설익은 가톨릭 신앙에 만족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자기 얼굴을 벽에다 대고 주님을 뵈옵기를 원하거나, 또는 주님을 자기네들의 영혼한 구석에 처박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의 말과 우리들의 행위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그들의 마음을 포함해서 모든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대가 사도직의 사업에서 일할 때에는, 현재만을 위해 건설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똑같은 정신을 나누어 가진 그대의 형제들이— 그대가 지금 의지에서 씨뿌리고 있는 것을 거둬들이게 되고, 그리고 그대가 지금 기초를 쌓고 있는 것에 집을 세우게 되기를 바라는 바램을 가지고 이 일에 당신 자신을 바치십시오.

그대가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채위지게 된다면 그대의 큰 희망은 옳게 설정될 것입니다. 그대는 더이상 명성에 대한 갈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그대의 이상을 전달하는 것에 갈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아주 신적인 사업을 위해서, 즉 성성(聖性)을 북돋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스스로를 바칠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을 시성할 때에 성교회는 그들 생애의 영웅적 행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을 위해 일한다면 당신과 경쟁할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야말로 당신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이세상에 사는 동안 그대가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자 하는 진지한 결심을 하십시오. 때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의기소침하고 메마른 마음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불을 지핀다는 이 지상에서 남녀의 사명은 참으로 고귀하고 영웅적이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힘차고 환희에 찬 싸움을 통해 평화와 행복을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정말 보람 있는 일입니다.

그대는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영혼을 위해 명예를 걸었으면 합니다

성인들의 통공을 통해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과 아주 가깝게 결합되어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 거룩한 결합을 두려움없이 지키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혼자라면, 그대의 고귀한 포부는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혼자 있는 양은 거의 언제나 길잃은 양입니다.

저는 그대의 열성이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대를 도울 사람 없이, 일을 시작할 자원의 길핍에 직면하여 그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두 팔밖에 없지마는, 저는 가끔 심고 추수할

50개의 팔을 가진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성령께 그 효율을 청하십시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그것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러시아어로 된 책 두 권을 발견하고서, 그 말을 배우고 싶은 엄청난 열망을 느꼈습니다. 그대는, 지금은 몹시 무미건조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엄청난 분량의 밀의 결실을 가져올 그 국민 속에서 한개의 밀알같이 죽는 일의 아름다움을 상상했습니다.

그 열망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 서는 작은 일과 매일매일의 위대한 사명에, 그대의 공부에, 그대의 일에, 그대의 사도직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대의 신앙형성에 당신 자신을 바치십시오. 그대에게는 아직도 퍽 많은 손질을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것은 덜 영웅적이거나 덜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무엇에다 씁니까?

그대가 공부하는 것이 무섭게 힘든 일임을 발견할 때에는 그 노력을 예수님께 바치십시오. 그대가 그대의 지식을 원수와 싸우는 무기로 사용하고 그렇게 해서 많은 영혼을 얻게 되도록 그대의 책들을 계속 열심히 읽고 있다고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서는 그대의 공부가 기도로 되는 길로 잘 들어서게 됨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에 그대가 여러 시간과 여러 날을 낭비한다면, 그대가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그대는 당신 영혼의 문들을 악마에게 열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행동 방법은 악마에게 “편안하게 계십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그대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어려움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원수인, “다른 쪽”은 쉬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더욱이, 하느님 사랑의 승자인 바오로 사도가 선포하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진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의 생명은 우리들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고 있고, 그것을 되찾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대가 견실하게 준비되어 있는가의 여부에 얼마나 많이 달려 있는가를 그대는 인식합니까? 많고 많은 영혼들이!

그런데 지금 그대는 완벽하게 공부하거나 일하기를 멈추려고 합니까?

정상에 도달하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길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고결하고 늠름한 노력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교도의 길로 그대의 이웃을 끌어내리는 천하고 비열한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만약에 언제나 그리고 모든 일에서 성실하고 개방된 형제애를 가지고 사람들을, 어떤 사람이라도 대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하느님을 대면하면서 산다는 것을 저에게 이해시키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저 작고, 사적이고, 한심스러운 야망들을 가진 ‘야망적인’ 사람들은, 하느님의 친구들이 봉사정신을 통해 그리고 그러한 ‘야망’없이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대는 초조해서 속을 끓이고 있습니다요. 그리스도의 넓은 진영 안에서 예상되는 일과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 서둘러 스스로를 단련하고 틀에 박고, 두드리고, 닦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피곤하거나 실패하거나 어둠에 잠길 때 등 그 열정이 자극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넓은 진영에 있어서 주어진 사명’에 변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거짓된 겸손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우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안락의 정신이라 불러야 합니다— 그것은 그대를 하느님의 착한 아들같이 행동하는 것을 멈추게 합니다. 그대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대의 나이든 형제들이 헌신적인 일에 여러 해를 보냈는데도, 그대는 그들을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쳐들지 못하거나, 또는 쳐들 수 있게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볼 때 그대는 부끄럽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소망, 스스로를 잊고 싶은 소망, 성성(聖性)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 등 온갖 열망으로 당신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십시오. 비록 신중한 충고자가 암시한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볼 때가 정말 올 것인가를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열망들을 매일 더 강렬하게 만드십시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열망을 지닌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천에 나타나는 소망을 가지며, 그 열망을 매일매일 하는 일에서 실행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대를 ‘친구’라고 부르셨으니, 그대는 그 부름에 응해야 합니다. 빠른 걸음으로, 필요하다면 빠른 걸음으로, 신의 발에 맞춰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방관자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자기 일은 잊어버리십시오. "당신의 형제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생각하며 사는 것, 한마디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 당신의 야심이어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쁨 속에서 마리아만이 포도주의 부족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작은 일이라도 깨닫는 것은 마리아처럼 하느님을 사랑하지만 결코 열렬히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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