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당신의 영혼과 마음, 당신의 지성과 의지 속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의지에 대한 믿음과 의탁의 정신을 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갈망하는 내적 평화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만약에 억제하기를 시도하기조차 하지 않는 격정으로 하여금 은총의 “끌어당겨 주심”에서 그대를 끌어가 버리게 한다면 어떻게 평화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하늘은 그대를 윗쪽으로 끌어올리고, 그대는 당신 자신을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핑계를 찾지 마십시오; 그대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계속한다면 당신 자신을 찢어서 갈라놓을 것입니다.

평화도 전쟁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충성심, 게다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려는 결의가 없다면 승리도 평화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대의 그 근심거리들에 대한 치유책이 있습니다. "바로 인내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초자연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대와 함께 가시는 것이니 두려움과 정신의 동요를 서둘러 버리십시오. 그런 두려움이나 동요는 유혹을 늘리고 위험을 가중시킬 뿐이니 철저히 피하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사가 끝장나면서 모든 것이 기대에 어긋나게 전개되고 엄청난 불운이 닥쳤을 때 우리는 곤혹스럽게만 지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예언자의 믿음직한 기도를 생각해 내세요. “정녕 주님은 우리의 통치자 주님은 우리의 지도자 주님은 우리의 임금님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이사

33:22).”

우리들의 선익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의 계획과 합치하도록 이 말씀을 매일 경건하게 읽으십시오

만약에 시선을 하느님께 맞춰서 걱정거리들 앞에서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알게 된다면, 즉 자질구레한 일들과 시기심과 부러워함을 잊을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데 있어 능률적으로 일할 때 필요한 많은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 친구는 진심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늘 우리들의 친구이신 분과 함께여서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깊은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현존함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이럴 때 이 얼마나 평안합니까.

그대가 나그네길을 가고 있던 어느날 어떤 형제로부터의 따뜻한 인사가 세상의 정직한 길들이 그리스도에게 열려 있음을 그대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복자의 정신으로 그 길들로 출발해 나가는 일입니다.

만약에 하느님께서 주님의 자녀들을 위해 그들이 그 안에 살고 성화되도록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그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은 매우 행복합니다. 가끔 그대가 하느님께서 주님의 어떤 한 아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음을 알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에는 당신 안 깊숙이에 자리잡은 평화와 기쁨 한복판에서 그대는 비탄과 열정에서 우러나는 슬픔의 고통을 느끼기는 하나, 그것이 실제로 그대를 불안하게 하거나 당황하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좋습니다마는 그대가 그가 마음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두십시오. 그리고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그렇게 한다면 그 물줄기들은 제 길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대가 정말로 주님 안에서 당신 자신을 포기한다면 그대는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만족할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그대가 하는 일들이 희망했던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비록 그대가 그 하는 일들에다 모든 것을 집어넣고 필요한 모든 방법을 썼다 하더라도 그대는 그대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하는 일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수나 실수 등이 계속되어 당신의 마음은 아픕니다. 그와 동시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쁨에 찬 걸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겪는 마음의 아픔이기에 실패해도 평화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암흑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우리들의 영혼이 눈멀고 불안할 때, 우리들은 바르티매오처럼 빛으로 가야합니다. “주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하고 되풀이하고, 소리치고, 더없이 강하게 외치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대에게 햇빛이 밝아오고, 그대는 주님께서 그대에게 허락하신 광명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거친 성격에 대항하여, 이기주의와 편안함을 찾는 정신과 혐오감에 대항하여 싸우십시오. 우리들은 공동 구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그대가 받는 상은 그대가 해낸 씨뿌림과 아주 직접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은 악이 풍성한 선 안에 빠져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운동의 문제이거나 무엇인가 반대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들은 낙관에 가득차서 젊음과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그리고 주님을 포기하거나 주님을 전연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함이란 머뭇거리거나 무관심하게 머물러있음을 의미하지는 않고, 능동적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인간적인 선한 예의범절을 통해서 그대는 당신과 다른 누구와의 사이에 다리 놓을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이 진리에서 더 멀리 벗어날 필요가 없도록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출구를 하나 남겨 놓아야 합니다.

폭력은 어느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사도직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난폭한 사람은 비록 그가 첫번 전투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언제나 지는 쪽에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외톨이가 되어 몰이해에 의해 갇혀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속하면 자기를 몰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폭군의 전술은 그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수 즉 악마와 그 추종자들이 수많은 사도직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오래된 함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인데도 그들을 경쟁상대로 여기지만,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공격적인 논쟁으로는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리고 그 사례를 토의하는 사람들 가운데 광신자가 들어있을 때에는 일이 결코 정리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저는 그대가 왜 화가 났고 왜 실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사용한 것과 같은 무기로 보복만 당한 것이 아닙니까. 즉,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교훈으로 활용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당신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어렵고 정의롭지 못한 모순에 봉착해 있는 동안 그대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해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해 왔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우리들의 머리를 깨뜨린다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깨진 머리 그대로 걸으면 되니까.”

한가지의 역설: 제가 “너의 걱정거리들을 주님께로 던져 버리면, 주님께서 너를 떠받쳐 주실 것이다.”라고 한 시편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날이 갈수록 머릿속의 걱정거리가 줄어들었습니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모든 것이 더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평화의 모후이시고, 그래서 성교회에서는 주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영혼이나 그대의 가족이 괴롭거나, 또는 사회에서나 민족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잘못되어갈 때에는 중단하지 말고 주님께 외치십시오. 이 호칭으로 성모님을 부르십시오: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대는 적어도 그대가 마음의 평정을 잃었을 때 그렇게 외쳐 보았겠지요? 그대는 그 즉각적인 효과에 놀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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