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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친구들»에는 세례를 주제로 하는 2 항이 있음.

여기 계신 하느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자문해 봅시다. “주님, 어째서 우리에게 이러한 힘을 주셨습니까? 어째서 우리에게 당신을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권한을 부여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저희가 이 힘을 좋은 곳에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사도 9,6 참조) 그분의 대답은 간단명료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자유는 진리에 봉사할 때에만, 또 온갖 유형의 노예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추구할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스도교의 무궁무진한 보화, 곧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로마 8,21)를 사방에 선포하고픈 저의 열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이것이 ‘선의’의 본질적 의미이며, 이 ‘선의’로써 우리는 “악에서 구별해 낸 선을 추구”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근본적인 점에 관하여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양심상 지녀야 하는 책임을 통감하게 합니다. 우리를 위한 선택은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면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 선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부모님에게서 가톨릭 신앙을 물려받았고,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세례로 새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초자연적 생명이 우리 영혼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생 내내 날마다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순명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태도 그대로 악마의 유혹들을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하느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성을 세우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히브 13,14 참조). “이 세상은 다른 세상, 곧 아무런 근심도 없는 본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세속적 노력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세속적 노력들을 성화하여 복된 믿음으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만이 모든 사람에게 어디서나 참된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1928년 이래, 저는 우리가 사회를 절실히 그리스도화할 필요가 있음을 끊임없이 역설해 왔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모든 차원에 초자연적 전망을 불어넣어야 하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상 업무와 직업을 초자연적 은총의 질서로 승화시키려 애써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인간사가 세속적 실재들의 덧없음과 시간을 초월하여 새로운 희망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품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상처 입은 양심을 달래 주고 자극하며 또 안정시킵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활동하시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우리는 비록 의지가 박약하고 쓸모없으며 개인적 단점과 약점들로 짓눌리기는 하지만 날마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주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아브라함처럼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거듭거듭 말씀드려야 합니다. 이로써 전능하신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활력으로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온갖 근심, 증오, 의심, 무지, 오해 그리고 비관주의를 극복하는 생활 방식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