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하느님의 친구들»에는 책임감를 주제로 하는 3 항이 있음.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마태 20,1).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꾼을 구하려 여러 차례 되돌아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부름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해 질 녘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그분이 약속한 품삯은, 달리 말하자면 그분 자신의 모습이요 그분을 닮은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모습이 돈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러합니다. 그분은 각 사람의 처지에 맞게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우리의 경우를 보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고, 신앙 안에서 자랐으며, 우리 주님께 명백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손짓하는 것을 느낀다면, 아무리 마지막 시간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시장에서 서성대거나 햇볕을 쬐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단 1초도 남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넓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듣지 못한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남는 시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자연적으로 말해서, 영적 불구자일 수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의 가족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선행을 소홀히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누룩과 반죽에 관한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한다면, 모든 영혼을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이기심의 발로입니다. 만일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본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수많은 재능과 자질도 주셨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대량생산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창조하셨고, 당신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재능과 자질들을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데 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받은 선물들을 도구로 활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제발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열망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여분이나 가장자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누룩이 발효에 쓰이지 않는다면, 부패하고 맙니다. 누룩이 사라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죽에 생명을 주고 사라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기심과 쓸모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며 버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린다고 해서 예수님께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초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그러한 기회에 관하여 저는 끊임없이 가르쳐 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 교부들의 저술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권고하여 그들 마음에서 악을 뽑아낼 때에 그들을 뱀에게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웃이 그의 선한 일에 손을 흔드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수많은 방법으로 도움을 베풀며 그들의 모범으로 이웃에게 힘을 불어넣습니다. 이러한 기적들이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나 육신이 아니라 영혼에 생명을 준다면 더욱 위대합니다. 여러분도 약해지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러한 기적들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초대인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교회는 소수 특권층을 위한 피신처가 아닙니다. “누가 위대한 교회를 이 땅의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말합니까? 위대한 교회는 온 세상입니다.” 이렇게 묘사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또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십니다. 여러분의 유산이 땅끝까지 펼쳐 있으니, 그것을 차지하십시오.” 그물을 기억합니까? 거기에는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집이 가득 차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루카 14,23 참조). 그분은 아버지시며, 모든 자녀에게 둘러싸여 살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