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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느님의 친구들»에 오푸스데이 → 일상 생활 속 거룩함 항이 있음.

여러 해 전의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참으로 적절한 한 말씀으로써 이 대화를 계속하고자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나가는 모든 것, 하느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혼이 목표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도록 하느님께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온갖 평온과 평화를 잃게 되는 이유를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휴식 또는 여가 시간에도 초자연적 전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휴식과 여가가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직업에서 최고 위치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또 세상사에서 자유로운 선택과 노력의 보상으로서 최고의 칭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모든 인간적 활동에 생기를 주는 초자연적 전망을 잃는다면, 안타깝게도 그릇된 길로 빠질 것입니다.

여담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말해 온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저를 찾아온 어느 누구에게도 정치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제가 지향하는 것은, 거룩한 교회를 섬기고자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힘입어 저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오푸스데이에 관한 기본적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교도권이 설정한 것 외에는 아무런 규제 없이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사안에 참여하는 데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그에 따른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제가 걱정하는 유일한 것은, 여러분이 그 한계를 넘어 신앙에 명백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으로부터 여러분을 이탈시키지 않는 한, 여러분의 의견은 마땅히 존중될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얻어내신 자유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또한 그들은 극단적 분파들로서, 자신들의 세속적 견해를 교의로 둔갑시키려는 자들 또는 신앙의 가치를 부인하고 중대한 오류들에 휘둘려 사람을 타락시키는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주제로 되돌아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비록 여러분이 사회에서, 공적 업무에서, 자신의 직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만일 영적 생활을 소홀히 하고 우리 주님을 무시하면, 결국 완전한 실패로 끝나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관한 한, 그리고 참으로 중요한 최종 분석에서, 승리는 오직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올 것입니다. 어정쩡한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서는 마땅히 아주 행복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불안과 고통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행복에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자기 영혼을 할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쓸개즙보다 더 쓴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날마다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하고, 그분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며, 그분의 왕국을 온 인류에게로 확장해 가려고 참으로 노력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의 외침에 오롯이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고 우리 마음은 심하게 흔들립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저는 오늘 다시 한 번 이 목표를 설정하고, 여러분과 모든 사람에게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우리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들에게 평화,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고, 땅을 변화시키며, 이 세상 안에서 세상 것들을 통하여 우리 주 하느님을 찾으려면, 개인의 성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온갖 유형의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 결혼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처럼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요? 남편을 잃은 과부들에 대해서는요? 젊은이들에 대해서는요?”

저는 ‘하나의 냄비’만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보통 저는 우리 주님께서 하나의 냄비와 한 종류의 음식으로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하셨다는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주님께서는 개개인 모두를 성덕으로 부르십니다. 젊은 사람이건 나이 든 사람이건, 미혼이건 기혼이건, 건강한 사람이건 병약한 사람이건, 배운 사람이건 배우지 못한 사람이건, 그 사람이 어디에서 일하건,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개개인 모두에게 당신을 사랑해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분을 더욱 신뢰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의 대화로써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보여 드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