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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교만 → 기도에 대한 필요성 항이 있음.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 안에서 휴식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은 참으로 부드럽고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아버지입니다. 날마다 그분을 ‘아버지’ 하고 많이 부르고, 마음속으로 홀로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저는 당신의 자녀여서 자랑스럽고 힘이 납니다.’ 우리 내적 생활의 참 모습이 이런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느님을 향한 신심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지향으로 몇 가지라도 항구하게 실행함으로써 착한 자녀의 마음가짐과 생활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경고하고 싶은 것은, 신심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정형화된 틀입니다. 그러한 틀은 종종 훌륭한 업적을 이루려고 하거나 착수하려는 열망으로 거짓 위장됩니다. 반면에 일상적인 임무들에 대해서는 나태해지고 등한시합니다. 이런 일이 시작되려고 하거든, 우리 주님 앞에서 성실하게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언제나 피곤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혹시 여러분이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찾지는 않았나요? 여러분이 일을 할 때에 그 성실하고 인내하던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이전의 관대함과 희생정신의 결핍 때문이 아닌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동안 여러분이 해 온 형식적 신심 행위, 보잘것없는 고행, 즉각적인 성과가 없는 사도적 노력들이 모두 아무런 선익도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공허함 속에서, 어쩌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곧 그분께 온전히 충실해질 것을 당부하시는 말씀은 흘려버리고 새로운 계획을 구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놀라운 것처럼 보이는 이 구상은 오히려 악몽에 가까워서, 우리는 현실을 망각하고 성덕을 향한 가장 확실한 길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초자연적 관점을 놓쳤다는 명백한 표징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어린 자녀이며, 우리가 겸손하게 다시 시작하기만 한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고 특별히 시간을 내어 봉헌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미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위하여 시간을 충분하게 내십시오. 그리고 되도록이면 시간을 고정시키십시오.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실 안에 남아 계시는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감실 앞으로 갈 수 없다면,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 속에 있는 모든 영혼 안에 신비롭게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충고하건대, 할 수만 있다면 그때마다 기도실로 가십시오. 저는 이때 경당이라고 하기보다 기도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예식을 거행하는 공식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내밀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곳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확신하는 대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성체의 형태로 감추어져 계시지만 참으로 현존하시는 감실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여러분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방법이나 형식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의 자유도 구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제가 하려는 일은, 모든 사람이 우리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격려하고, 모든 영혼을 있는 그대로 각자의 특성대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 안에 당신의 뜻과 계획을 불어넣어 주시도록 간청하십시오. 우리의 머리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고 우리의 모든 외적 행동에까지 불어넣어 주시기를 간청하십시오. 단언하건대, 여러분은 이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실망과 이기심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 곁에 마음을 두는 사람에게는 온갖 장애물이 사라질 것입니다! 병들고 절뚝거리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늘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주님께서 “문제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우리는 “저의 문제는 …”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빛이 밝아 옵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거나 내적 평화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특히 어려움들이 있을 때에 주님을 신뢰하며 마음을 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대부분 교만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교만은 때때로 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대단히 중요한 사람으로, 특별한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모멸감을 느낍니다. 바로 이때가, 기도하기 좋은 때이고 우리의 그릇된 태도를 고칠 때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길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교만은 겸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기쁨이 마음속에서 샘솟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 영혼의 날개들에 진흙이 엉겨 붙은 것처럼 느낄지라도, 이제 우리 비참함의 진흙들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만일 우리가 극기와 고행을 실천한다면, 더러운 흙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고, 하느님 자비의 강풍에 힘입어 저 높이 솟구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