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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길»에 고난 → 고난의 가치 활용하다 항이 있음.

쓸개와 초맛, 혹은 재와 쓴맛이라니! 입이 마르고, 설태가 끼고, 갈라지는 것이라니!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느낌은 영혼의 쓴맛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대에게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있는데도” 그대가 자신을 내놓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겸손해지십시오! 그대가 최선을 다하는 데도 육신과 정신에 그런 쓴맛이 남아있겠습니까?

고통은 복되도다. 고통은 사랑받으라. 고통은 성화돼라… 고통은 영광받으라!

만약 그대가 육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고통이 정화요, 또 마땅한 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것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대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그분’의 성심이 우리 것보다 작지 않습니다.

고통? 좋은 것입니다.

그대가 쓴 편지를 인용합니다. “저의 기쁨과 저의 평화. 만일 제게 평화가 없다면, 저는 참된 행복을 결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는 무엇일까요? 평화는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평화는 승리의 결과입니다. 평화는 제게 부단한 투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투쟁없이는, 저는 결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시련을 소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대는 기쁨과 평화를 잃고, 그런 역경으로부터 어떤 영적 혜택도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스승의 입술로부터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를 듣지 못했습니까? 위로를 느끼십시오. 그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지이기에 그분께서 그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또 가지를 치십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Ut fructum plus afferas” 말입니다. 

당연히 그 절단, 그 가지치기는 아픕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대의 사도직이 얼마나 울창하게 성장하고, 또 무르익을까요!

인간적인 위로들을 잃은 그대는 고독감을 느낀 채 홀로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텅 빈 컴컴한 나락에서 가느다란 외줄에 매달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대의 외침을, 도와달라는 그대의 절규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버림받아 마땅합니다. 겸손해지십시오. 자기 자신을 찾지 마십시오. 위로를 찾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그것을 참아내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대의 기도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그대의 감각에 평정이 깃들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대의 마음은 다시 잠겨질 것이고, 그대는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 161, 188 편집자 주 '일곱개의 자물쇠' 참조

잔뜩 달아 오른 육신. 이것이 그대의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정신적으로 또 감각적으로 그대를 괴롭힙니다. 모든 것이 그대를 유혹합니다. 

나는 강조합니다, 겸손하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빨리 그 상황에서 그대를 해방시켜주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고통은 즐거움으로 바뀌고, 유혹은 확고한 지향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동안, 믿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희망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십시오. 그리고 입으로만 중얼거린다고 생각되더라도 애덕의 기도를 계속 바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