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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과의 대화»에 자유 → 책임감 있는 자유 항이 있음.

아시다시피 성경의 바로 이 가르침이 오푸스데이의 정신의 핵심입니다. 이 가르침을 따르신다면 여러분들이 완전한 정신으로 일터에서 생활하고, 일상에서 작은 일들에 사랑을 불어넣음으로써 하느님과 온 인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사소한 일들에 숨어 있는 거룩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카스티야의 한 시인이 썼던 시구 한마디가 이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필기를 하면서, 일을 잘 하는 것이,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안토니오 마차도, 시집 161).

여러분, 한 신자가 매일의 가장 작은 일을 사랑으로 행할 때, 바로 그곳에서 초월적인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수없이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성소가 매일의 평범한 산문을 굉장한 시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여러 번 망치를 두드리듯이 반복하여 말을 했던 것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은 평소의 일들을 거룩한 지향으로 행할 때에 여러분의 마음속 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성화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모든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꿈과 거짓의 이상주의나, 환상을 버리십시오. 제가 "만약 신비주의"라고 이름 지었던 행동생각들, 즉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었다면…, 만약 내가 더 건강했다면…, 젊었다면…, 나이 들었다면…”이라는 모든 생각들을 버리십시오. 그 대신 눈앞에 있는 물질적이고 직접적인 현실에 집중하십시오. 거기에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루카 24,39)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수 없이 많은 세상의 일들을 이 진리의 빛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활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당뿐 만이 아니라 이 모든 세상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지적으로 직업적으로 적절하게 되려 노력합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개인의 식견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결정이기 때문에, 작든 크든 일어나는 모든 일 안에서 겸손히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개인의 성찰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는 결코 자신이 교회를 대표해서 성당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믿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적 결정”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성직주의’이고 잘못된 "공식적인 가톨릭"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건 좌우간, 사실의 본성에 왜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올바른 "평신도 정신"을 전해야 합니다. 이 정신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매우 정직해짐으로써 각자의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둘째, 충분히 ‘그리스도교적’이 되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 교우들을 존중하게 됩니다. 셋째, 충분히 ‘가톨릭적’이 되어, 인간적 갈등에 어머니이신 교회를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 자유, 교회가 기꺼이 인정하는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면 결코 일상생활을 성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생활에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위급한 때만이 아니라 매일 여러분들의 권리를 행사하셔야 된다는 초대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는 또한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훌륭하게 이행하라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정치 경제적인 일들, 학업과 직업 등 모든 분야에서 여러분의 자유로운 결정들로 인한 결과와 여러분 각자가 지니는 개인적 자립성의 결과를 용기 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적인 "평신도 정신"은 편협함이나 광신(狂信)을 멀리 할 수 있게 합니다. 더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평신도 정신은 여러분이 동료 시민들과 평화롭게 지내도록 돕고, 이러한 이해와 조화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