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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는 그리스도왕를 주제로 하는 2 항이 있음.

교회 전례력 상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제대(祭臺)의 거룩한 희생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께 드리는 희생 제물을 새롭게 봉헌합니다. 우리가 곧 감사송에서 함께 노래하겠지만, 정의와 사랑,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성스로운 인간애를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의 영혼 깊이 엄청난 기쁨을 실감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지신 왕입니다. 그분은 온 우주와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분이지만, 결코 전제 군주처럼 우리 위에 군림하시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당신의 상처를 우리에게 말없이 내보이며 작은 사랑을 당신께 달라고 하실 뿐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여전히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루카 19,14)라는 잔인한 거부의 목소리를 듣는 걸까요? 이런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거부하는지조차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 얼굴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저는 주님께 속죄하고 싶습니다. 말보다 비열한 행동으로 표현되는 끊임없는 아우성들을 들을 때면 저는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행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그분을 반대합니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간 사회에 대한 접근 방식을 통해, 도덕과 과학과 예술을 통해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말로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악당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의 행동으로 그분을 모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왕’이란 표현만으로도 기분이 상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 왕직’이 정치적 용어로 생각될 수도 있다는 듯이 그 말에 대해서 고지식하게 반대합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왕이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길 거부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계율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계율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경이로운 사랑(愛德)의 계명조차도 말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야망은 스스로의 이기심을 섬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주님께서는 제게 “저는 섬길 것입니다”라고 말없이 반복해서 외치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굳세지도록 해달라고 주님께 부탁드립시다.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소란 떨지 말고 천진한 마음으로 당신의 부르심에 항상 충실하게 해달라고 간청합시다. 그리고 우리 마음 깊이 그분께 감사드립시다. 우리는 당신 사랑의 대상이자 당신의 자녀로서 그분께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은 젖과 꿀로 넘쳐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해 얘기하며 참으로 큰 기쁨을 찾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쟁취하신 것입니다.

섬김으로써 다스리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을 다스리시게 한다면, 우리는 결코 권위주의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섬길 것입니다. 저는 “섬기다”라는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 임금을 섬기고 그분을 통해 당신의 성혈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방법’을 알기 바랍니다. 오직 섬김으로만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분을 널리 알리고 사랑받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모범을 통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우리가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해 그분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네 모든 삶의 주님이시며 우리들 존재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한 번 이 섬김의 증거자가 되면 우리의 언어로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방법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사도 1,1)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 행동으로 가르치시고, 그런 다음에 거룩한 강론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섬기려면 진정으로 ‘인간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인간적이지 못하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 위에 아무것도 세우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질서와 이기심, 또는 자만(自慢) 위에는 아무것도 정상적으로 세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불의(不義)를 정의(正義)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악을 선이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악과 마주했을 때 또 다른 악으로 대항해서도 안 되며, 오히려 굳건한 교리와 선한 행동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충만한 선 앞에 악이 굴복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과 우리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다스리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담으려 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에 평화를 세우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평화를 이루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나라는 거룩함을 향한 열망과 은총을 받아들일 겸손한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과 거룩한 사랑의 분출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