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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는 하느님의 말씀를 주제로 하는 2 항이 있음.

우리는 지금 성경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독서와 복음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빛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지력(智力)이 알아듣고 묵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하고, 행동하려는 우리의 열망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일치 안에 모여 있는” 하나의 백성이므로 우리들 신앙의 일치를 확신하며 사도신경을 암송합니다.

이어서 봉헌입니다. 인간이 만든 빵과 포도주를 주님께 바칩니다. 참으로 미소한 제물이지만 기도와 함께 바쳐집니다. “주 하느님, 저희를 받아 주소서. 겸손한 마음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소서. 주님, 오늘 저희가 봉헌하는 제물이 당신께 건네져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소서”.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우리의 미소함을 되새기고,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모든 것이 깨끗해지고 정화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떠올립니다. “저는 제 손을 씻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 집의 아름다움을 사랑해왔습니다.”

방금 전 세수식(洗手式) 직전에 우리는 성령께 간구하였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드리는 이 희생제사를 축복하시기를 간청합니다. 손을 씻은 후 사제는 미사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으로 삼위일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받으소서, 거룩한 성삼이시여(Suscipe, Sancta Trinitas)”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기리며, 또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을 기억하며 우리의 예물을 받아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봉헌된 이 제물이 모든 이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사제는 신자들을 기도로 초대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Orate, fratres,)” 왜냐하면 이 희생제물은 여러분의 것이기도 하고 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온 교회가 비치는 제물인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비록 미사에 참례한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실제로 한 사람만 참석했거나 주례 사제 혼자만 있더라도, ‘형제 여러분 기도하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미사는 보편적인 희생제사이자, 모든 종족과 국민과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는 전례인 까닭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인들의 통공을 통해서 봉헌되는 모든 미사로부터 은총을 받습니다. 미사에 수천 명이 참석했든지, 아니면 딴생각만 하는 복사(服事) 소년 한 명만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어느 경우이건 하느님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과 땅이 같이 노래합니다. “거룩하시도다(Sanctus, Sanctus, Sanctus…)”

저는 천사들과 함께 경배하고 찬미합니다.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그들이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며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서도 함께 계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이시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동시에 그분의 성체와 성혈의 모친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하느님이시며 완벽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관여 없이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성모 마리아께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혈관에는 당신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 피가 갈바리아산에서, 그리고 미사에서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에 봉헌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인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깊은 사랑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한데 모였습니다. 그 깊은 사랑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복되신 성체의 형상 아래 숨어 계십니다. 이로 인해마치 군중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 육신의 귀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마태 13,3-6)

참으로 생생한 장면입니다. 씨 뿌리시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씨앗을 뿌리고 계십니다. 그분의 구원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일을 나누어 맡길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어떤 곳에서,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의 사랑에 활짝 열려 있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과 본보기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한 메시지를 이 땅의 가장 먼 구석까지 전파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구성원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인 우리들에게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될 것을 요청하십니다. 양심적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매일매일의 노동과 우리가 맡은 직업상의 책무를 거룩하게 함으로써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셨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이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앞에서 우리가 읽었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진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으로 많은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수많은 영혼들을 흔들어 깨워 헌신하게 하고, 또한 충실하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의 삶과 행동은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아마도 수많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이상에 의해 자극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척박한 땅이나 가시덤불, 엉겅퀴밭에 떨어진 씨앗들이 신앙의 빛을 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닫아버린 영혼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화, 화해, 형제애 같은 이상들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거짓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소용없는 안간힘을 씁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쓰거나, 아주 교묘하게, 어쩌면 훨씬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