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는 그리스도인의 회심를 주제로 하는 5 항이 있음.

새로운 전례주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미사의 입당송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시작과 밀접하게 연관된 ‘어떤 것’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부르심(聖召)’입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제게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제게 가르쳐 주소서.” (시편 25,4). 우리는 주님께 우리를 인도해달라고, 당신의 발자국을 보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계명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랍니다. 그 계명은 곧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상황들을 생각해봅시다. 저는 여러분이 저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진심으로 겸손히 감사한다면 여러분은 더욱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내세울 만한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보통 우리는 어렸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부모님으로부터 하느님께 기원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런 뒤에는 우리 주님께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도록 우리의 선생님과 친구들, 지인들이 여러모로 도와주었습니다.

예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그분께 털어놓으십시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일반화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날 여러분처럼 평범한 어느 그리스도인이 여러분의 눈을 뜨게 해줬습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심오하고도 새롭고 복음서처럼 유구한 전망(지평)을 열어줬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진지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도들 중의 사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땠나요? 여러분은 십중팔구 혼란스러워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운 의지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느님께 말씀드린 다음에야 비로소 현실에 안주하려던 안일한 마음이 사라지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스스로 원했다는 사실이 바로 가장 초자연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굳세고도 그칠 줄 모르는 기쁨이 여러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 기쁨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버리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특권층의 일원으로 선택된 사람들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선택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성경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에페 1,4)

이런 생각이 여러분의 자존심을 채워주거나,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도록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신 성소의 뿌리이며, 이는 곧 우리가 겸손해야만 하는 근거가 됩니다. 우리는 화가의 붓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지는 않습니다. 걸작을 만드는 데 화가의 붓이 한몫하긴 하지만, 우리는 화가만을 믿을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창조주이자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분의 손에 들린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도들 중의 사도가 된다는 것 

빛으로 온 세상을 채우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사명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이 사명은 세상 끝까지 하느님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든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삶을 바쳐야만 합니다.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되지 않도록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이 거룩한 과업을 돕도록 다른 사람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하고픈 마음을 품게 하십시오. 주님을 향해 가는 길에 동행하도록 바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를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이 자는 동안” (마태 13,25) 가라지를 뿌리는 이들이 왔다는 그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숱한 경험들에 휩싸여 이기적이고 피상적인 것들의 무기력함에 너무도 쉽게 스스로 휘말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세상과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마주하기를 꺼리게 되고 맙니다. 이런 무기력 상태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을 슬픔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유감스러워해야 할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경우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들에게 주신 성소의 모든 결실들을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대함이 부족해서 그렇게 살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은총은 그것을 숨기라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고 내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길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현세는 물론 내세에서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기쁨과 평화(平和)에 대한 즉각적인 약속이 함께하는 거룩한 경이로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차려서 관대해지는 방법을 아는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하지 않을 때에 한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위험한 잠에 빠진 사람들을 깨워야 합니다. 삶이란 놀이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키워내야 하는 거룩한 보물이란 사실을 그들에게 일깨워줘야 합니다. 또한 선한 의지와 열망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 실천하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그 길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재촉하고 계십니다. 우리들 각자가 한 명의 사도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사도들 중의 사도가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불러온 이들이 다시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알리도록 힘을 북돋울 것입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어보겠죠. 그리스도에 대한 이 깨달음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러면 저는 아주 자연스럽고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직업 생활에 종사하고 가족을 돌보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고귀한 관심사들을 더불어 나누십시오. 또한 모든 사람들의 정당한 자유를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제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여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건 간에 누구나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 거룩하게 될 수 있으며 하느님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열망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매일매일의 일상적인 일들을 거룩하게 만들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성은 바로 일상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삶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성모님께서 당신 삶의 거의 모든 날들을 당시의 보통 여인들과 똑같이 사셨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가족을 돌보고 자녀들을 키우며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여인들처럼요. 성모님께서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상적인 일들이 중요하지 않고 의미도 없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매일매일의 노동,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을 돌보는 일, 친구와 친척들을 방문하는 것 같은 일들을 하찮게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상의 일들이야말로 얼마나 복된 것인지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삶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것, 그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 그 사랑은 너무도 완벽해서 성모님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성의껏 수행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의 아주 작은 행동조차도 결코 상투적이거나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모범이자 길이십니다. 우리는 성모님 같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상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단순하면서도 평범한 삶의 모범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인간 조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온갖 한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흔들림 없는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우리가 자신들과 같은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행복해? 이기심과 편히 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덕적으로 살며 타인에게 봉사하기 위해 헌신하도록 누가 당신에게 가르쳐준 거야?’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교인의 거룩한 존재적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령, 그리고 성모님에 관해 그들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영혼에 쏟아부어주신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기 위해 우리의 초라한 언어를 사용할 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요한 성인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신 놀라운 말씀들을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성모님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꾼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그것이 성모님 말씀의 전부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뵙고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묻도록 하신 것뿐입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일반적인 그리스도교적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도직이란 거대한 가르침의 과업입니다. 여러분은 실제적이고 개인적이며 충실한 사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지평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우면서도 솔직하게 도와줘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신앙을 살아내는 여러분의 본보기를 통해, 거룩한 진실의 힘이 넘치는 사랑의 언어를 통해 그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대담해지십시오! 사도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도움에 의지하십시오. 성모님은 결코 우리의 어머니 되심을 그만두지 않으실 것이므로 당신 자녀들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임무와 마주하도록 해주실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의 삶을 묵상하는 이들에게 항상 크나큰 호의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들을 주님의 십자가로 이끌어 주시고 성자의 모범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에 데려가 주십니다. 이러한 만남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정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행동이 여러분과 저처럼 더 젊은 형제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맏아들과 화해를 이루도록 전구(轉求)해주십니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스스로를 온전히 당신께 내어드리려는 수많은 회개와 결심들 이전에 성모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찾고, 변화를 열망하며, 새로운 삶에 나서도록 북돋워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당부하신 “무엇이든지 그(예수님)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라는 말씀이 우리들의 실제적인 헌신과 그리스도교의 성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성모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개인적 삶을 밝혀주십니다.

주님 앞에서 나누신 성모님의 이 대화는 우리의 신앙에 진정 새로운 활력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대화에서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니이신 분께 대한 공경과 사랑에 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5월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사랑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잘 이용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우리의 만남을 통해서 말입니다. 일상의 작은 일과 작은 배려들을 통해 당신 자녀인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성모님께 보여드리도록 애씁시다. 우리의 거룩함과 우리의 사도직이 무언가를 실제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드립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주시는 구원사업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가 쉼 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성모님께서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성모 마리아, 저희의 희망, 하느님의 종, 상지(上智)의 옥좌(玉座) 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Sancta Maria, spes nostra, ancilla Domini, sedes Sapientiae, ora pro nobis!)

그리스도인의 낙관주의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닐까? 가끔은 이런 생각에 빠져듭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을 새롭게 하는 일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차분히 생각하세요. 하느님의 경이로움을 통해 우리의 모든 갈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명백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희망의 미덕에 우리가 진정으로 의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에 무덤덤해지지 맙시다. 특히 우리 주님께서 매일 사제의 손으로 내려오신다는 놀라운 사실에 둔감해지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깨어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권능을 확신하고 당신의 약속을 다시 한번 들을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마르 1,17) 여러분은 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할 쓰임새 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배에 올라타 노를 젓고 닻을 올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신 이 세상이라는 바다를 향해 나서야 합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루카 5,4)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사도적 열정이 거짓된 겸손으로 인해 약화되거나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개인적인 실패 때문에 엄청난 중압감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실수를 충분히 감안하고 계십니다.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우리가 온갖 한계와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지닌 피조물임을 알고 계십니다. 또한 죄에 이끌리는 존재들임을 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분투하라고 하십니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알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회개하고 더 나아지겠다는 열망을 굳세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단지 주님의 도구일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1코린 3, 5-6) 이 가르침에서 우리가 반드시 서로 새겨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한없는 효용성’이란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구하기로 결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 당신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