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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하느님 안의 의탁 → 유순함 항이 있음.

하느님의 권능과 우리의 나약함 

“주님의 손이 짧아 구해내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사 59,1) 이전 시대에 비해 오늘날에 하느님의 권능이 결코 약해진 게 아닙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또한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 지구와 다른 천체들의 운동, 피조물들의 착한 행동, 그리고 역사상 이뤄진 모든 선한 일들… 간단히 말해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며, 모든 일이 그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성령의 활동은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지나쳐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드러내시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인간의 죄가 하느님의 선물이 보이지 않게 시야를 가리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느님께서 항상 역사(役事)하고 계심을 일깨워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십니다. 또한 당신의 은총으로 지음 받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성령께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단 하나의 개념으로 간추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온순함입니다. 이는 곧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활동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들 자신 안에서 성령이 주신 선물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성령이 영감을 주신 여러 활동과 제도들, 그리고 우리 마음 깊이 불러일으켜 주시는 애정과 결심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십니다. 우리가 미사 전례 때 부르는 찬미가에 나오듯이 성령께서는 은총의 수여자요, 우리 마음의 빛이며, 영혼의 손님이자, 노동 중의 휴식이며, 슬픔 속에 만나는 위로이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인간에게 순수하거나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때 묻은 이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병든 것을 치유하며, 추위를 녹이는 불을 지피고, 굽은 것을 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과 영원한 기쁨의 안전한 항구로 인간을 이끄시는 분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완벽해야만 합니다. 세상 안에 계시는 그분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모호해져선 결코 안 됩니다.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의 권능을 쏟아부어주신 표징과 현실들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靈)께서 오실 때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16,14)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 안에서 거룩한 일을 수행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 거룩한 일이란 이 땅에 사는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그분이 정하신 성사, 그리고 그분의 교회에 대한 신앙이 없다면 성령에 대한 믿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라 행동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성령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마치 자신은 교회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교회를 대표하는 몇몇 사람들의 부족함과 한계를 지적하고, 교회 밖에서 교회를 심판하는 일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더 나아가서, 사제가 제대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갈바리아산(골고타)의 희생을 재연할 때 성령의 특별한 중요성과 풍요로움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성령 알아차리기 

성령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서 소유하셔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더욱더 당신과 닮게 만들어주시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성숙하고 심오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멋대로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자라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 2,42)

이것이 바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던 방식이며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네 신앙의 가르침이 우리의 일부분이 될 때까지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체 안에서 우리 주님을 받아 모시고, 기도 안에서 주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며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동을 감추려 들지 말고 주님과 마주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의 방식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마도 몇 가지의 장점은 갖게 될 것입니다. 해박하게 사고하는 능력, 어느 정도 치열한 활동, 일정 수준의 실천과 헌신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영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로 일치하지 않고, 그분의 구원사업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류 그리스도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단순화된 버전만을 실천하는 의무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비록 각자 받은 영적 은사와 서로가 처한 인간적 상황들이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오직 하나의 믿음, 하나의 희망, 하나의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로 그 하느님의 선물을 나눠주시는 분은 한 분이신 성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던졌던 질문을 우리들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코린 3,16) 우리는 이 말씀을, 더욱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을 대하도록 우리가 초대받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어떤 사람들에겐 성령은 아주 낯선 분이고 어마어마한 미지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단순히 이름뿐인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안에 계신 세 위격 중 한 분이시며, 우리가 함께 얘기할 수 있고 그분의 삶을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교회 전례 안에서 우리가 배운 대로 우리는 단순하게 그리고 신뢰하며 성령을 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주님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됐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특권을 더욱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거룩하게 됨’의 위대함과 진리를 모두 알게 될 것입니다. ‘거룩하게 됨’이란 하느님 당신의 생명 안에서 더불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룩한 실체들을 그려 넣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자신에게도 생소한 듯한 그림을 그리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닮아가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인 동시에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에 마치 밀납 위에 직인을 찍듯이 그분 자신의 인호를 박으십니다. 바로 이런 방법으로 성령께서는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범에 따라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게 해주시고, 동시에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인간에게 되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가 우리네 일상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봅시다. 우리로 하여금 친근하게 성령과 성부 그리고 성자를 대하도록 해준 삶의 방식을 설명해봅시다. 적어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온순함’, ‘기도의 삶’, 그리고 ‘십자가와의 일치(一致)’ 바로 이 세 가지입니다.

먼저 ‘온순함’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심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열망과 활동에 초자연적인 울림을 주는 분은 바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끌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고, 심오한 방법으로 그 가르침 속에 스며들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빛을 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그 빛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부르심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모든 일들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감지합니다. 우리가 성령께 온순함으로 대한다면,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 안에 더욱 완벽하게 새겨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매일매일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로마 8,14)

만약 우리가 생명을 주는 원리이신 이 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에 의해 인도된다면, 우리의 영적 활력은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의 손안에 두게 될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확신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자기 아버지의 돌봄에 자신을 맡기는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유구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어린이의 길’입니다. ‘어린이의 길’은 결코 감상적인 표현이 아니며, 인간적 성숙의 부족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어린이의 길’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사랑의 경이로움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해주는 초자연적 성숙함을 뜻합니다. 초자연적인 성숙은 우리의 미소함을 깨닫게 해주며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하나로 일치시켜줍니다.